허크헤기- 바다







허크는 의외로 바다와 친한 사람이었다.
콜헨와 모르반, 혹은 다른 곳으로 향하는 뱃사람들과 스스럼없이 말을 트는 이였다. 얼핏 들은 바로는 그는 동쪽대륙에서 긴 시간 배를 타고 건너건너 대륙의 끝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 긴 시간동안 망망대해를 향해하며 자연스레 몸에서 짠내가 날 정도가 된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밑에 보이지 않는 깊고 새까만바다도 풍랑이 거세게 치는 폭풍우 속 바다도 고요하게 잠든 에매랄드 빛 바다도 모두 허크와 한 몸 인양 굴었다.
마치 바다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허크도 딱히 숨기거나 할 필요가 없었기때문에 출항을 할때 앞장서거나 뱃일을 거들곤 하였다.
그렇다고 해도 해박한 항해술은 고작해야 바다처럼 넓은 호수를 건너는 용병단배에 쓸일은 없었다. 그 누구처럼 으스대거나 자랑 하는 일 없이 묵묵하게 모두 내린 배안에서 돛을 내리던 허크에게 별안간 파도가 몰아 닥쳤다.


"좋아해요 허크"


뭐 두고 간게 있는 모양인지 모두 마을로 돌아간 배에 혼자남아 밧줄을 동여매던 허크가 고개를 들자 헤기가 갑판에 발을 들여 놓았다. 휙 고개를 다시 돌리며 "찾는거 있어?" 하고 묻는 허크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우물쭈물 거리다가 헤기가 내뱉은 말을 바로 알아 듣지 못했다.

허크에게 몰아닥친 파도는 가볍게 철썩이며 오금을 간지럽혔다.


"....아직 이거 덜 끝내서 "


자신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거절이나 승낙의 대답이 아닌 엉뚱한 허크의 대답을 들은 헤기가 고개를 푹 숙이고 죄송해요 한마디를 남기고 쏜살같이 배에서 내려 선착장 저 멀리로 사라졌다.
헤기가 폴짝 뛰어내린 배는 아주 미세하게 출렁이며 그 위에선 허크도 흔들렸다.
밧줄을 단단히 동여매고 단도리를 끝낸 허크가 그제야 배에서 내려 상황을 판단했으나 도통 무식한 허크의 머리로는 이 상황이 이해불가였다. 여관으로 돌아오는 느린 발걸음속에서 헤기가 방금 전 조그만 입술을 열어 무어라 말했는지 생각해냈다.


좋아해요 허크

허크가 헤기에게 고백을 받았다.




좋아한다는게 같은 용병단원으로써 동료애로
"마 임마 니 자쓱 사람 참 좋네. 맘에든다! " 이런 뜻이 아니란건 허크의 단순한 무식한 머리로도 알 수 있었다.
왜? 무슨 뜻으로? 아니 어째서?
먹고 자고 싸우고밖에 모르는 허크의 머릿속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과부하가 걸린듯이 정지했다.

제 또래는 하나없는 삭막한 곳에서 땀냄새나고 격한 녀석들과 지내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고고한 헤기를 싫어하는 놈들도 많았지만 대다수가 헤기를 인정하고 아꼈다. 용병을 하기엔 능력이 과했다. 차라리 기사를 한다고 했다면 모두가 응원하며 떠나 보냈을 것이다.
허크또한 이제 막 어린티를 갓 벗은 헤기에게 인정받기어렵고 공을 세워도 출세하긴 힘든 용병을 추천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부득부득 헤기는 우기고 버티고 싸워서 용병으로 남았다. 마치 이것만이 옳은 길인것처럼 굴었기에 허크도 끝엔 그저 그렇구나 고개를 끄떡여 주었다.


그런 헤기가 허크를 좋아한다.

허크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용병이었기때문에 남은것이다.
깊은 신념을 가진것도 아니요 정의감에 마족에게서 사람들을 구했던 것은 아니었고 늘 옳은 선택을 하고 영웅처럼 행동하지도 않았으나,

헤기가 그런 허크를 좋아한다.




투박하고 굳은살이 박힌 단단한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연거푸 하였다. 어이없지만 헤기와 허크는 같은 여관 방을 쓰는 사이였다.
좁은 콜헨마을에 로체스트군과 트레져헌터들 까지 모이니 숙소가 모자라 같은방에 몰아 넣어진지 꽤 되었다. 이래서 용병단 전용 숙소를 만들자고 내가 그렇게 주장했는데..괜히 애꿎은 용병단의 쪼달리는 예산을 들먹이며 허크가 한숨을 쉬었다.
이제 막 돌아 온 참이고 씻고 싶었다. 당장에라도 문을 열고 더러운 갑옷을 벗은 뒤 맨몸으로 걸어가 샤워하고 싶은 마음이 꿀뚝 같았으나, 방으로 들어가면 헤기가 있을것이 분명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채 큰 덩치로 여관복도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건넛방에 투숙중인 용병이 집채만한 허크가 앞에 있어서 문을 못 열겠으니 써억 들어가라는 꾸중에서야 객실문을 열었다.

다행히 헤기가 없었다.


찬물로 씻으니 과부하 됐던 머리가 차게 식은 느낌이 들었다. 내친김에 팔을 걷어 부친 허크가 더러워진 갑옷도 박박 씻었다. 속옷까지 전부 빨고 나온 허크가 창문으로 밖을 내다 보았다.
어둑어둑 해진지 오래인데 아직도 헤기가 방으로 돌아 오지 않았다. 분명 허크보다 먼저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나?

그리고 아침이 될 때까지 헤기는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돌아오면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고민해 봤으나 딱히 마땅한 대답을 생각해내지 못한 허크가 열리지 않는 문을 노려보며 밤을 샐동안 어디 있다가 나타난건지 멀쩡한 모습으로 헤기가 여관 1층에서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괘씸한 생각에 접시를 들고 헤기가 있는 테이블로 걸어가 앉는 동시에 헤기가 잘먹었습니다 하고 허크를 쳐다보지도 않고 일어나 서둘러 사라졌다.

아침식사 뿐만 아니었다. 대장간에서 새로 주문한 갑옷 피스를 찾으러 갔을때 마주친 헤기 뒤통수는 또다시 말을 걸기도 전에 사라졌고 잡화점 에서도 마굿간에서도 머리카락 끝이 보일라 치면 사라지는 헤기모습은....누가 봐도 자신을 피하고 있었다.

이 상황이 허크는 난처하고 또 어색했다. 어제 그일이 있기 전까지는 헤기는 허크의 그림자라고 불릴 정도로 허크가 가는곳에는 언제나 헤기가 있을 정도로 붙어 다녔다. 별 다르게 잘해준 것도 아닌데 헤기는 허크를 따랐고 그게 내심 귀찮지는 않아서 냅두고 있었다.


"오늘은 헤기가 이상하게 없네?"

눈치가 빠른 한놈이 물었다

"싸웠냐?"

차라리 싸웠으면 사과라도 하지 허크가 속으로 혀를 찼다.

"애랑 싸우다니 허크 그렇게 안봤는데... 빨리가서 과자라도 사다 바쳐."


정말로 과자를 사다주면 헤기가 다시 돌아올가.
터무니 없으나 또 들어보면 솔깃한 제안에 허크가 식료품점으로 향했다.
그러고보니 헤기는 평소에 단음식을 좋아했다. 간혹 가다가 제돈으로 사온 과자를 허크에게 먹으라 건네주기도 하였다. 실로 아이같은 입맛이나 허크도 그 입맛에 길들여 졌는지 그전에는 즐기지 않던 과자가 가끔 생각나 스스로도 몇번 사다 헤기와 나눠먹지 않았나 하는 기억들이 이제야 생각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도 헤기는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종이 봉투 속 과자는 눅진하게 녹아 달라붙었다









*



썩어가는 나무조각들을 모아 모닥불을 겨우 피워낸 허크가 배낭에 천조각을 모두 헤기에게 덮어주었다 절벽바로 밑 해안은 조금만 앞으로 나가도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다. 거대한 바위가 만들어낸 아치밑에서 허크는 물고기를 잡겠다고 설치다가 바다에 빠진 헤기를 위해 불을 피우고 강제로 옷을 벗겨서 말리는 중이었다.


"죄송해요."
"어짜피 해야했던 일이야."


네가 바다에 빠지지 않았어도 노숙해야하는 상황에 피웠을 불이라고 대답했다.
낡은 모포를 좀더 맨몸으로 끌어당긴 헤기가 언제 잡아왔는지 튼실한 물고기를 나뭇가지에 꾀어 굽고 있는 허크를 보며 입을 열었다.


"허크는 몇살이에요?"


나이를 셈하지 않는 허크가 대충 스물몇해가 지났을거라고 답했다.
헤기의 동공에 붉은 불빛이 아롱거렸다.


"저도 허크 나이가 되면 허크처럼 강해질까요?"
"나 처럼?"

허크가 되물었다.

"네, 허크처럼."


옷을 벗길때 보인 헤기의 하얀피부와 가느다란 팔다리(허크기준)로는 어림없지 않을까. 태생적인 한계를 고민했으나 쉬이 입에서 부정의 말이 나오지 않은건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욕심인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욕망인지.
다만 헤기가 자신을 투영하여 미래를 생각하는것을 멈춰야 했다.
수 차례 우연인지 헤기를 임무중 구해주는 일이 계속 생기자 헤기가 자신을 심하게 따른다는걸 눈치챘다. 언젠가 헤기가 영웅에 대해 말한 기억이 났다.


"헤기, 나는 영웅이 아니야."


소금뿌린 물고기 구이가 익어가는 모습을 보던 헤기가 고개를 들었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라는 헤기의 표정에 조급해져 서둘러 말을 이었다.


"네가 생각 하는 것 만큼 정의롭지도 못하고 누굴 위해 희생 할 만큼 착한 놈도 아니야. 태어날때부터 가진게 몸뚱아리 밖에 없어서 용병을 하는거지 대단한거 없어."


필사적으로 허크는 자신을 비하했다. 나처럼 되고 싶다고? 미친소리. 허크는 환영의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아도 과거를 잊지 않았다. 살인귀는 살인귀답게 굴었어야지 다 잊은것처럼 사람행세를 해? 무슨 염치로?

헤기가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톡 하고 떨어짐과 동시에 말했다.


"영웅도 사람이에요."


후두부를 한대 얻어맞은듯이 얼얼하다. 당연한 것을 잊어버렸던 사람처럼 그리고 헤기가 나즈막히 일깨워준 것도 전부.
그들도 사랑하는 사람이있고 아끼는 동료가 있고 때로는 화나고 질투하고 아파하고 비방하고 배신하고 이기적이고 절망하는 사람이었다.



허크는 과거를 일일히 기록하지 않는 사람이라 그 일이 언제인지 정확히 알지못한다. 꽤 오랜 시간 허크는 헤기와 단둘이 임무에 나간적이 많기 때문에 사막에서 길을 잃었을 때인지, 안개 빛 봉우리 해변에서였는지, 얼음계곡에서 얼어 죽을뻔 했던 기억인지 모르겠단 말이다. 그 만큼 이미 허크는 헤기와 지낸 시간이 많았고 허크의 인생동안 이렇게 길게 함께한 사람은 이제 대륙을 건널때 같이 지낸 바닷놈들보다 헤기가 먼저였다.

그말은 허크에게 바다보다 이제 헤기가 더 익숙하다는 소리였다

바다는 가끔 예측 불가능 해도 배를 띄워 드나들 수 있는 존재였다. 물 속은 차갑고 어둠으로 가득했지만 허크에겐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헤기는 바다처럼 헤엄칠수도 없고 기상을 예측 할 수도 없는 존재다. 허크는 헤기가 두려웠다.

허크는 가끔 거세게 파도치는 폭풍에 몸이 젖은거라 생각했으나 착각이었다.
이미 심해 속에 빠져 영원히 바닥을 알지 못하는 추락 중이었다.




*





더 이상 참지 못한 허크가 마을에 수소문을 하기 시작했다.
헤기 못 봤어?
헤기 본 사람?
헤기 어디 있는지 알어?

허크가 헤기를 찾자 다들 허크보고 헤기한테 잘해라. 어린애한테 무슨 심한 말을 했길래 화가 났냐. 허크가 잘못했네. 전부 저가 잘못 했다고 난리였다. 내가 잘못했나? 그런가 보다. 그래서 헤기가 화나 났다. 그렇게 생각했다.


"혼자 얼음 계곡 정찰 나갔어."


지나가듯 말해준 용병단의 말에 서둘러 갑옷을 챙겨 작은배를 출항 시켰다. 인근 해안으로 낚시를 할때 쓰는 배인데 버려두었던 낚은 고물배를 고쳐 놓은게 허크였다.



미로같은 얼음 동굴 깊은 곳은 코볼트 들이 진을 치고 있기에 혼자서 깊은곳까지 들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용병단이 표시해둔 마지노선 까지 들어가도 헤기는 보이지 않았다 길이 어긋난 것일까 미로같이 복잡해도 결국 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언젠간 만난다.
동굴이라 소리가 울려 큰소리로 헤기를 부를 수도 없다. 안쪽에서 부터 코볼트들이 달려나오기라도 하면 귀찮아 질테니.
아주 낮은 한숨을 살짝 내쉬던 허크의 귓가에 얕은 흐느낌이 들렸다. 동굴 얼음이 내뿜는 냉기로 차가워진 갑옷 이음새가 내는 삐걱대는 소리조차 죽인채 허크는 아주 천천히 다가갔다.


헤기는 정말 작았다.
자이언트와 맞먹는 허크의 덩치로 봤을 때 작다는게 아니고 누가 봐도 작았다. 나이가 어려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래도 작았다.
천과 가죽을 겹겹이 이어만든 전투복을 입고 큰 망토를 두른 헤기가 눈가가 새빨개 져서 콧물을 훌쩍 훌쩍 눈물을 또륵 또르륵 손바닥은 차가운 얼음에 쓸려 손가락 끝부터 살짝 보이는 손목 까지 새빨갛다.
소리를 죽인다고 죽였으나 그만한 덩치가 움직이는 소리를 헤기 앞에서 까지 아예 안 낼수는 없었다.
헤기는 울다가 허크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앉아 있던 바닥에서 벌떡 일어났다. 혹여나 미끄러운 얼음 바닥에서 넘어질까 한 걸음에 허크가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자 빳빳하게 곱은 차디찬 작은 손이 눈에 들어 왔다.


"놔주세요...."


헤기가 울음 섞인 애원을 내뱉었다.
허크가 고개를 저었다.


"얼어 죽고 싶어?"


아주 약하게 동상에 걸린 두손을 꼬옥 잡고 허크가 자신의 외투 안으로 헤기를 잡아 당겨 넣었다. 헤기의 얼굴에 허크의 가슴이 닿았다. 허크가 자신을 앞에서 꽉 껴안은 자세가 되자 헤기가 격하게 반항 했지만 허리를 붙잡고 그대로 들어올려 품에 안고 얼음 계곡을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헤기가 잡힌 몸을 움직여 주먹을 쥐어 허크의 가슴을 치려 했으나 굳은 손가락이 접히지 않아 손바닥으로 허크의 가슴을 꽝꽝 내려쳤다. 이내 두손이 허크의 한손에 결박 당했다.
얼음 계곡을 나오는 동안 차갑게 얼어 붙은 몸이 점점 풀렸다.


호숫가에 묶어놓은 배에 헤기를 안은채 올라탔다. 이대로 마을까지 가긴 시간이 부족하다.
이미 땅거미가 묽은 안개 퍼지듯 져있다. 한밤중에 바다처럼 넓은 호수를 이 작은 배로 가로 지르는 일은 날씨가 좋아도 삼가야 한다.
허크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며 가만히 앉아 있었고 헤기를 꽉 안던 힘이 잠시 느슨 해졌다. 헤기가 감았던 눈을 뜨고 새파랬던 입술에 혈기가 돌아 새빨갛게 변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에 그 입술이 열렸다.


"그때 왜 나한테 키스했어요?"


헤기가 내는 심장고동 소리를 느끼던 허크가 순간 헤기를 놓쳐 바닥에 떨어 트릴 뻔 했다. 뭐? 내가?


역시나. 한껏 상처받아 다시 울것같은 얼굴의 헤기를 품에 안고 내려보고 있으니 허크 자신이 무슨 추행범이라도 된듯 극심한 죄책감이 일었다.
그럼 헤기가 고백한것도 기억도 안나는 자기가 먼저 키스해서 그런거라고?

그때가 도대체 언제....


뇌에 거친 톱니바퀴가 기름칠을 먹지 못해 삐그덕거리며 돌았다 금방이라도 이음새가 풀려 우르르 무너질것 처럼 굴었다. 머릿속은 이미 포워르와 한바탕 전쟁을 치뤄 황폐해진 것과 다르게 쿵쿵 대며 점점 소리가 커지는 심장은 달랐다.
팔라라가 지고 벌써 푸른 이웨카가 뜬 하늘은 헤기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멍청하게도 헤기의 말을 듣고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한번 미끄러진 닻은 허크 스스로 끌어 올릴 수 없었다. 머리는 행선지를 정해서 출항해야하는데 이미 마음은 정박해버린듯 하다.



붉은 라데카가 허크의 등 뒤로 떠올랐다. 붉고 깊은 눈동자에 헤기가 담겼다. 두개의 달 아래에서 그대로 허크가 고개를 내려 입술을 맞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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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헤기한테 고백받고 대답 안해줘서 헤기 울리는 고답이 고자 허크가 보고 싶었는데 잘 됐나 모르겠네요.

키스는 글의 시점에서 일주일 쯤 전에 허크가 술처먹고 헤기한테 뽀뽀했습니다 술깨고 허크는 기억안남ㅎ


어떤 대사를 꼭 쓰고싶다 해서 쓴건데 쓰고나니 앞뒤가 막막해서 약 삼개월쯤 휴대폰 메모장에 잠들어 있던 글이었네요 . 더 써야 할거같은데 더 쓰면 안될거같은 그런 기분 저 뒤로는 배 위에서 섹스 했겠지 허크헤기 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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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글 비밀번호  (0) 2016.12.31



 허크는 좀비로 세상이 망할 때 하릴없이 누워있었다.
 감옥은 티비도 없고 바깥세상 소식이야 감독관 뒷주머니에 담배나 끼워주는 놈들이나 알았으니  몸이 근질근질하면 체력단련실에서 아령이나 들었다 놨다 할것이고 자유시간에 나가서 족구나 한판 뛰는게 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교도소는 세상과 단절된 요새였고 안에서 밥을 축내는 놈들도 기껏해야 담배나 약이나 처했지 감염이라는 소위 좀비바이러스를 외출해서 걸려 올정도로 성실한 모범수도 없었다.
 그래서 허크는 바깥이 혼란으로 인해 감옥의 벽이 무너져 내릴때 까지 살아남았다.

 김 빠진 콜라처럼  독기 빠진채 얌전히 형을 살던 허크는 벽이 무너진 순간 감옥은 더 이상 안전 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을 잔뜩 한것같은 놈들이 피를 흘리며 교도소 안으로 들어와 옆방 돼지새끼의 목을 물었을때 비로소 대가리가 돌아간 범죄자들은 앞다투어 밖으로 도망갔다. 어짜피 세상은 멸망했고 그들이 도망쳤다한들 잡을 경찰도 군도 없었으니까.

 사회적 질서와 법규가 무의미해진 세상에서 풀려난 범죄자들은 좀비들과 한데 어우려져 같이 청소 당하던가 좀비에게 죽던가 총과 무기를 약탈해서 그들의 카르텔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무엇도 허크에게 무의미했다.





 "해야 할일이 있으니까."


 세상 다 산 표정으로 겨우 허크 반절밖에 안오는 꼬맹이가 말했다.
 허크가 아무리 망한 세상에 관심이 없어도 들리는 말이 많으니 알수밖에 없었다. 이 망한 세상에서도 낙원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추악하게 변하기 전에도 썩었던 세상은 그 낙원조차 돈이 있어야 했고 허크 같은 놈들은 세상이 망해도 밑바닥 이었으므로 별로 변한게 없었다. 우습게도.


 "그 빌어먹을 썩은 시궁창도 들어가고 싶어하는 놈들이 널렸는데. 역시 어디 도련님이라도 되나봐. 생각하는 근본 자체가 다르네."

 "이해해달라고 말한거 아니에요."


 어딘지모르게 화가 난 허크가 비꼬자 헤기가 도리어 입술을 잘끈 씹으며 대답했다.


 "다만.....여기서라면 좀비바이러스를 없앨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라고...."



 없앨 수 있다?
 세상을 멸망하게 만든 바이러스 치료제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쯤은 허크도 익히 들어 알았다. 길거리를 전전하던 몇 달간 살아남은 놈들에게서 허크가 감옥에 있을동안 벌어진 바깥세상에 대해 귀가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뒈졌지만 살아남은 나 자신'을 자랑하는 일 밖에 안남은 녀석들이 길거리에 널렸으니까.

 세상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어찌 해낼 수 있다 희망을 가지는거지? 허크는 헤기가 흥미로웠고 또 화가났다. 그럼 저 벙커로 꼬리 자르고 도망한 졸렬한 놈들은 없앨 수 있는 바이러스 가지고 벌벌 떨었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없앨 수 있었다면 세상이 이렇게 망하진 않았을 텐데. 무슨 근거로 자신하는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일까 싶어서.



 우연히 헤기를 구해주고 보답으로(?) 잠시 지낼곳을 얻은 허크는 자기를 귀찮게 굴것이란 헤기의 예상과는 다르게 가만히 쇼파에 누워 천장에 있는 무늬를 세었다.

칼날무늬 한 개.. 칼날 무늬 두 개... 칼날 무늬 세 개....칼날 무늬 네 개.....칼날 무늬 다섯 개......

 아, 시발 지루해.
 감옥에서도 할게 없었지만 밖에 나오니 더 할게 없었다. 이 집주인 헤기는 뭔가 말을 걸면 자꾸 울것처럼 굴어서 살면서 지금까지 허크가 해온 일중에서 제일 재밌었다. 또 뭐라고 울컥거리려나 싶어 지하실로 내려가는 뒷통수를 힐끔보았다.
'뒤에서 말걸면 기겁을 하고 울겠지.'
거대한 몸집에 안어울리게 소리를 죽이고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간 허크는 불도 다 키지 않은 지하실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보았다.


 지하실을 가득매운 커다란 책상위에는 허크는 이름도 모르는 과학도구들이 즐비해있었다.
 벽면에는 이상한 기계들이 가득세워져 있었다. 어둡고 정리가 잘 되지 않은것만 빼면 무슨 실험실.연구실 처럼 되어있는 모양새에 허크가 의문을 품을 찰나 책상의자에 앉아 무언가 하던 헤기의 팔뚝이 언뜻 보였다.
 붉고 금방이라도 생긴것처럼 피가 뭍어나오는 상처가 있었다. 허크는 저 상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새 깨닫고 눈을 깜빡였다.
어두워 잘못 본것이라 믿고 싶었으나 헤기 팔의 상처는 분명.... 


좀비에게 물린 상처였다.






 한 두번 해본 것도 아니건만 언제나 채혈을 할때 손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에일이 직접 손을 마주잡고 가르쳐줬지만 헤기는 아직도 자신의 혈관을 스스로 찌르는 것이 두려웠다. 이번 혈청은 부디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영양가 좋은 음식을 맘껏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피를 많이 뽑을 수도 없었다. 이런 외딴 곳에서 혼자 쓰러져봐야 도와 줄 사람도 당장 없으니 언제나 대비를 해줘야한다.
 잠시 어지러운 빈혈기가 돌아 헤기가 왼팔을 들어 이마를 짖눌렀다.

 왜 벙커에 안들어갔냐고 물어 봤지.... 좀비가 나타나고 이런 몸이 된 후로 집 밖으로 나간적이 손가락에 꼽으니 에일과 군인들 말고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 결과 헤기에게 저런 질문을 한 사람은 허크가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다.
 헤기도 사실 들어가고 싶었다.
좀비사태가 급속도로 퍼지기 전 생명공학 연구원인 에일이 벙커 입주 1순위로 제일 먼저 불려들어갈 때 헤기도 데리고 가겠다고 했고 헤기도 에일과 같이 들어갈 수 있는 자격심사를 받기 바로 직전,

....좀비에 물리지만 않았어도 말이다.



 간신히 도망친 헤기가 피를 철철 흘리며 집으로 뛰어 들어왔을 때 에일의 표정이란 헤기가 과거 알고 있던 에일의 모든 표정보다 처참했다. 헤기도 울컥 눈물이 났다. 학교 사물함에 두고 온  걸 가져 오겠다고 에일몰래 나갔다가 화를 당했으니 입이 열개라도 모자르고 무릎이 닳도록 싹싹 빌어도 모자랐다. 헤기는 여기서 좀비가 되어 죽는다 치지만 그럼 남은 에일은 어떻하면 좋단 말인가. 제발 신이시어. 부탁 하나만 할게요. 제가 에일 앞에서 좀비가 되진 않게 해주세요.

 사람마다 잠복기는 다르지만 좀비 바이러스는 3일이내로 발병된다. 스스로를 다치게 할만큼 이성을 잃고 오로지 본능만이 남아 좀비가 된 스스로를 생각했다.
 상상속에서 좀비가 된 헤기가 에일을 물었다. 헤기는 좀비가 되어도 계속 울었다. 미안해. 미안해. 


 '벙커에 형 혼자 들어가.'

 '널 두고 갈순없어.'

 '이 팔로는 어짜피 들어갈수 없어.'

 '헤기.'


"물리자마자 좀비가 되는 사람도 있다던데 난 좀 튼튼한가봐. 내 걱정말고 들어가서 얼른 치료약 만들어 주면 되잖아?"


하지만 에일은 데리러 오는 군을 무르고 일주일을 버티며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헤기는 일주일이 지나도 좀비가 되지 않았다.




 좀비의 혈액,체액이 체내로 침투하면 발생하는 전염병으로 좀비로 완전히 변하게 되면 이성을 잃고 오로지 공격적인 성향만 남아 움직이는 사물을 공격 하기 때문에 초반에는 변종광견병 바이러스일것이라 생각했다. 좀비들이 주로 공격할때 물어 뜯는것도 광견병 바이러스가 신경조직을 통해 대뇌의 변연계를 감염시켜 생기는 현상으로 이를 토대로 좀비의 혈액을 체취하여 전 세계 연구원들이 백신을 만들었으나 실패하였다.

 그들은 다치면 낫지않는다. 생명체가 가져야 할 재생력이 기이 할 정도로 사라져 버리게 된다. 좀비가 문 상처는 낫지 않고 좀비가 되어도 물린상처는 남는다.
 헤기는 좀비에게 물렸으나 어째서 인지 감염되지 않았다. 에일은 이것이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믿었다.

 '헤기 잘들어. 네 말대로 벙커에 널 데려갈 순없어. 하지만 넌 좀비가 되지 않았고 이걸 정부가 안다면 곧바로 실험용 쥐 신세가 될거야. 그래서 널....여기 두고 갈거야. 다만... 세상을, 아니 널 구할 수 있게 도와줘.'

 에일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군에게 연행되다싶이 벙커로 사라졌다.

 헤기는 에일이 알려준 대로 보름마다 구호물품을 전해주러 오는 군인을 통해 자신의 혈청을 보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구호 물품이 뜸해져도, 에일과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수단이 줄어들어도... 좀비바이러스가 자신을 감염시키는 것같아 악몽도 꾸고 많이 울었지만 헤기는 아직 인간이었다.




"헤기."


 어지러움이 가시자 뒤에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혼자 지낸지 오래되어 문 단속을 할 생각을 못했더니 허크가 지하실까지 찾아온 모양이었다. 헤기는 재빨리 팔꿈치까지 걷어놨던 긴소매를 내리고 피를 뽑던 주사위를 안보이게 밀어넣었다.


 "팔 상처."

 "......."

 "......."


 역시 집으로 데려온것 부터가 큰 실수였다. 알고있었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다른 사람 입에서 들려오는 헤기의 이름 두글자가 떨리게 느껴왔다.


".....변명하진 않겠어요. 좀비에게 물린거 맞아요..."


 헤기는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쎄게 주먹을 쥐고 말했다. 이제 허크가 집밖으로 뛰쳐나가는 일만 남았다. 지금 당장 눈앞에서 자신의 목을 물어 뜯 을수도 있는 좀비와 한공간에 있고싶은 사람은 없을때니까.
 허크 입장에서 헤기가 자신을 속였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해한다. 그래서 허크가 낮은 음성으로 물었을 때 당장 허크가 자신을 칠지도 모른단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던 헤기는 예상외의 소리에 눈을 떴다.


"그래? 그것 참.....아팠겠네."

"......"

"좀비에게 다친 상처는 안낫는다며. 그럼 아플거아냐?"
 
".......다친게 아니고 물린거에요."

"그거나, 이거나."

"당장 좀비로 변해서 허크를 다치게 할지도 모르는데...."

"지금은 아니잖아?"


 그리고 네가 좀비로 변해봤자 하나도 안 무서운데. 허크는 그 약한 팔다리로 누굴 잡아먹겠냐며 웃었다.
 벙찐 헤기가 말을 잇지 못하자 허크가 다치치않은 다른 팔을 잡아 이끌었다. 그나저나...


"배고픈데 점심은 언제먹냐."





 자신의 가장 큰 비밀을 허크가 알게 되어도 변한것이 없었다. 허크는 때때로 의미없는 말을 늘어놓았고 헤기는 허크가 옆에 있는걸 더이상 불편해 하지 않았다.

 벙커와 연락이 끊긴지 한달이 지났다.
에일은 잘 지내는걸까. 내 피로 백신은 잘 만들고있을까. 이미 수백번 제 몸속에 흐르는 항체는 변종 바이러스를 버틸 순 있어도 이길 수 없다는걸 몸소 느끼고 있지만 단 0.1퍼의 가능성도 믿고 싶었다.
 마트에서 구해온 식량도 덩치 큰 허크와 나눠 먹으니 평소보다 빨리 없어지고 있었다.

 불안하다. 이대로 에일은 벙커 안에서 나를 잊고 나는 여기서 서서히 감염되어 죽어가는것일가.
 헤기 자신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가지고 있는 항체가 좀비의 상처도 낫게하는 것이었다면. 팔의 상처가 나아서 벙커안에서 에일과 함께 백신을 만들고 있었을텐데.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헤기도 이런 지옥은 싫었다. 낙원에 가고 싶은 열망은 헤기도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었다.
 고이고 고인 불안과 공포의 댐은 헤기가 잠길 만큼 차올랐고 허크가 한 말은 둑을 허무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고보니 너 같은 놈을 본적이 있어."

"네?"

"로드루반에서 여기로 건너오는동안 만난 놈인데 좀비에게 물린지 한달이 지났는데 멀쩡하다며 옆구리를 보여주는 미친놈이었지. 난 어디 개에 물려가지고 허풍이나 떠는 건줄알았는데... 좀비에게 물려 변하는걸 본 바로는 그 상처는 좀비가 분명했단말이지."


헤기는 제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세상에 너같은 놈이 또 있었다 안심을 시켜주려는건 아닐거고 설마...


"그놈을 너도 만나보면 뭐가 나오지 않을까."


헤기가 기겁을 하였다.


"나갔다간 죽어요!"

"마트도 잘만 다녀왔잖아."

"운이 좋았던거죠! 그리고 그땐 정말 먹을게 하나도 없이 며칠을 굶어서 그랬던거고...."


마트는 바로 집 근처라 갈 다짐을 먹을 수 있었던것이다. 로드루반은 건너에 있는 도시가 아닌가. 여기서 차를 타도 하루밤이 걸린다.
헤기는 안된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후에 구호물품이 올때 에일에 이 사실을 전달하면 된다. 헤기는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모르는 바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깊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연락만 기다리며 굶주리다 죽느니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가져보는게 낫지않겠냐는 허크의 말은 헤기에게 답지않은 생각과 행동을 할 이유가 되었다.
 


"해야할일이 있다는 둥, 혼자 오만 폼 잡고 진지하게 말할 땐 언제고......"

"......갈게요."

"......"

"아니, 어딘지 알려주세요. 다녀올게요."




대번에 허크의 험한 말이 날아왔다.
정신나갔냐. 혼자갔다간 헤기 말대로 죽는다고 허크는 승을 냈다. 마트에서도 죽을 뻔한 주제에 어딜 혼자 가려 하냐며 같이가자고 했다. 헤기는 '허크가 저때문에 위험에 빠질 필요는 없잖아요.' 라고 했지만 허크는 '네가 바이러스를 없앨 방법이 있다고 했잖아.' 그렇다면 자신도 가서 세상을 구할 방법을 찾고 떼돈을 벌겠단다. 


 허크가 함께 가는 사실이 확정되자 헤기는 곧바로 지하실 금고에서 총을 꺼냈다. 마트에서 가져갔던 콜드권총과 에일이 호신용으로 쓰라고 남겨둔 글록 두자루.
 탄창은 적어보였다. 헤기는 금고에 보이는것 모두 짐에 쓸어담았다.
상처는 더이상 덧나지않지만 약과 거즈를 주기적으로 갈아주는게 좋다는 에일에 말에 따랐다. 혹시모르니 구조신호탄과 물, 담요, 혈청용 앰플과 키트, 주사기, 라이터, 그리고 또....

 헤기는 이런류의 짐을 챙겨본적이 없어서 또 무엇을 배낭에 넣어야 할지 곰곰히 생각했다. 
 허크는 이렇게 한 발자국 나가기 조차 막막한 곳에서 어떻게 버티고 지내온걸가. 자신은 아직 어린게 맞았다. 도움을 받지 못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니까. 그래도 헤기는 더이상 기다리고 있을 수 없다 생각한 만큼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좀비는 일단 한번 타격을 주면 회복 할 수 없기때문에 도망치는것이 쉽다. 움직이거나 큰 소리, 빛에 반응하지만 햇빛 밑에선 행동이 현저히 느려진다.
어짜피 그들도 변하기 전에는 인간이었던 존재들이므로 사람의 몸과 같다. 급소도 같다. 무섭지않다. 무섭지않아야 한다.




"차를 구해야해."


 허크의 말에 헤기도 동의했다. 로드루반까지 차를 타고 하루밤이 걸리는데 그거리를 걸어서 가는건 불가능했다. 허크도 차를 타고 왔다고 한다.
 헤기의 집은 바이러스 발병당시 군 부지가 근처에 있어 대대적으로 통제가 빨리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고 벙커로 일정주민이 들어갈수 있을만큼 부유했던 구역이기 때문에 좀비가 별로 없었다. 아마 살아남은 주민들도 대다수 헤기처럼 집안에 개인 벙커를 만들고 생활하고 있을것이다.
 하지만 하크 말에 따르면 로드루반은 달랐다. 


"썩은냄새가 진동하고 시궁쥐 조차 좀비가 되어 사람을 씹어먹는 무시무시한 곳이지."


 헤기가 흠칫 어깨를 떨자 허크가 걱정 말라는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마. 아직 그놈이 거기에 머물러 있다면 로드루반은 들어가지 않아도 되니까."


 차를 구하는건 쉬웠다. 헤기네 집 지하 주차장에 떡 하니 있는 레인지로버를 타고 가면 되니까.
다만 정작 가기전 준비해야 되는건 차가아니라 차에 실을 기름이었다.
하루를 꼬박 달려야하고 또다시 집으로 달려와야하는데 이틀을 달릴 기름은 주차장에 충분하지 않았다.


"근처 주차된 차에서 기름을 빼와야 하나. 아직까지 남아있다면 말이지"


 사거리에 정유소가 하나 있지만 기름이 남아있을지 미지수였다. 일단 집근처에서 충분히 기름을 구하고 가는길에 들리는걸로 결론이 났다.
 헤기는 기름을 구해 온다는 허크를 따라나서려고 했지만 혼자서 움직이는게 더 빠르다며 펌프와 기름통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주차장 셔터를 올리기 전 헤기가 쓰던 권총을 허크 왼쪽 점퍼주머니에 넣어주었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한시간이 지나고 허크가 들고간 기름통가득 휘발유를 구해왔다. 그러고도 모자라 어디서 가져왔는지 새로운 기름통에도 담아온 기름이 한가득이었다.


"허크.....능력 좋네요.."

"그걸 이제 알았냐?"


 허크가 세삼스럽다는듯이 코웃음을 치며 알았으면 나한테 잘해. 라며 트렁크에 기름통을 실었다.


 세상이 변하고 문명이 멈춘 인간들의 밤낮은 자연으로 회귀하였다. 해가 지는 시간이면 사방이 어두워지고 불빛이 사라진다. 그 어느곳도 환한 불빛을 내지 못했다. 밤이 곧 낮처럼 화려하게 빛나던 세상은 이제 없었다.

 허크와 헤기는 내일 아침 해가뜨자마자 출발할 수 있게 준비를 마쳤고 각자 방에서 이른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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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루반은 시즌2 엠마의 남편과 아들이 있다는 도시이며 이달의 트레져헌터길드가 있는곳입니다만 여기선 그냥 지명만 따왔습니다.

드디어 둘을 집밖으로 내보냈으니 이제 헤기가 좀비에게 공격을 당하고 허크가 구해주고 폴인럽 하는일만 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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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쥔 구식권총을 연신 확인하였다. 예전이라면 거들떠도 안볼 구형모델의 총이라도 있어야 안심이다.

지난 구호물품 이후 삼주동안 군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여기서 연락할 수단이 거의 없으니 벙커에서 오는 연락이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대우로 벙커 밖에서 생활하는터라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제 저녁 마지막 건빵을 물에 불려 스프로 마신게 전부다.
사람이 극도로 허기가 지면 앞뒤가 안보인다 했던가. 지난밤 내내 꼬르륵 거리는 배를 쥐어잡은 끝에 집안을 뒤져 무기란 무기는 전부 챙겨 조심스레 밖으로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류는 좀비바이러스로 멸망했다.

어느날 갑자기 시벌건 눈빛을 한 사람들이 다른사람들에게 달려드는 일이 일어났다. 그들은 이성이 남아있지 않아 보였으며 일반인보다 빠르고 강한 힘을 지녔다. 관절이 꺽이는 듯한 기괴한 움직임과 사람에게 달려들어 공격하는 행동에
모두들 그들을 '좀비'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특이성간질환자같은 병명을 내리던 의사들도 갑자기 멀쩡하던 사람이 돌변하는 이상현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이것을 '전염병'이라고 결론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엔 이미 픽션으로 소위 좀비물이라는 영화나 소설이 많이 있었다. 등장하는 좀비들은 사람들을 공격해 물었고  물린 사람들은 좀비가 되었다. 현실이 된 좀비바이러스는 인간의 상상력을 칭찬하듯 똑같이 물리면 좀비로 변했다.
좀비에게 물린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좀비가 되기전에 자살하거나 미쳐서 사람들을 해하고 다녔다.
좀비에게 물려도 좀비가 된다는 사실을 알린 국가는 서둘러 감염된자들을 격리시키고 사살해야함을 밝혔다.
하지만 순식간에 퍼진 좀비는 대처할수 없을 정도로 많아져 도시의 큰길가는 좀비시체와 그들이 일반인을 공격해 만들어진 새로운 좀비가 가득 매꿨다.

대피소 조차 좀비가 침입하여 사람들을 공격하자 국가는 강책을 내놓았다. 핵 전쟁을 대피해 만든 초거대 벙커에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적이고 사람은 너무 많았다.
결국 좀비바이러스를 위해 중요한 학자.연구가.교수들이 1순위로 들어갔으며 의사같은 전문직업군이 2순위 중요인사들과 나머지 돈많은 사람들이 입주하자 밖에는 일반시민들과 빈민층들이 남았다.

남은자들은 살기위해 몸부림쳤으나 결국 좀비로 변했고 군에게 사살당했으며 현재진행형이다.




셔터가 쳐진 대형마트건물까지 무사히 도착하자 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지금까지 무사했다고 안심하면 안된다. 이안에 좀비가 있을지 없을지모른다. 만나게 되면 즉시 머리에 총을 쏴야 헤기 자신이 산다.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기 위해 발꿈치를 들고 건물 뒤쪽으로 향했다. 마트는 대부분 지상 꼭대기 층부터 몇층이상을 주차장으로 쓴다. 건물을 빙둘러봐도 직원통로는 철제물로 막혀있고(일부러 가져다놓는듯하다) 지상창고는 강화 셔터가 내려져있고 그앞에 대형트럭이 가로로 문을 막고 있었다.

다행이 이곳 마트는 지상주자창을 올라가는 통로를 환기를 위해 2층높이부터 야외로 뚫어놔 들어가기 쉽다는 것이다. 
근처에 혹시 좀비가 있을까 조심히 이동한 헤기는 가져온 와이어를 땅에 깊이 박고 갈고리를 돌렸다. 제 한몸 단 몇초만 버티면 된다.
몇번의 시도끝에 단단하게 철고리가 난간에 박혔는지 확인한 헤기는 줄을 잡고 멀리서부터 있는힘껏 건물로 뛰어 올랐다. 단숨에 줄을 타고 난간에 올라 굴러떨어졌다. 후우. 해냈다는 안도감과 방금전 점프에 그나마 남아있던 기력을 써버려 어지러웠다. 얼른 마트에서 먹을걸 구해서 돌아가자.


큰 배낭을 매고 한손에 총을 든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긴장되서 미칠듯이 울리는 심장소리가 주차장 전체에 울리는 착각이 들었다. 몇대 남아있지않은 먼지쌓인 차들을 제외하고 주차장 내부는 휑했다. 좀비가 어디 숨어있을만한 곳이 없다며 내심 안심했다.

입구에 방화셔터가 내려져 들어갈수 없었다. 다행히 옆에 직원통로 비상구가 있어서 장비로 문을따고 들어갔다.
식료품매장이 있는 층까지 내려와 직원통로를 사용해 문을 열었다. 방화셔터는 직원통로에는 존재하지 않아서 손쉽게 헤기는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오는 내내 깜깜한 계단을따라 통로를 찾느라 잔뜩 긴장되서 땀을 바지에 몇번이나 닦았는지 모른다.

식료품 매대는 거의 텅 비어있었다. 전쟁이 일어난듯 사람들이 슈퍼와 마트등을 털었기 때문이다. 이곳도 마트사장이 벙커에 들어가 문을 닫은곳이다. 헤기는 그나마 남아있는 먹을것들을 배낭에 넣었다. 마트는 건물내부를 따라 빙둘러 직원전용 복도가 있고 그 복도를 따라 창고로 쓰는 높은 선반들이 있다. 또는 매대에 마저 진열하지 않은 물건들이 박스로 쌓여있다. 헤기는 그곳엔 좀 물건이 남아있겠거니 싶어 가려는데 어디서 소리가 들렸다.


먹을게 눈에 보이니 신나서 그만 잊고 있었다. 이 안에 좀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헤기는 서둘러 권총을 쥐고 한걸음 한걸음 물러섰다. 저 처럼 배가 고파 온 사람이길 빌었다. 헤기는 총도 제대로 쏴본적 없는 일반인이다. 원래는 벙커로 가야했지만......

또독또독 뭔가 조그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방아쇠에 걸친 손가락이 달달 떨렸다. 질척한 액체가 뭍은 무언가가 끌리는 소리와 함께 매대 중앙에 선 헤기의 눈에 조그만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


한눈에 봐도 그것은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다 썩어가는 팔과 다리. 옷에 뭍은 얼마나 오래된건지 모를 피자국은 본래 옷감의 색이 무엇인지 알수 없게 변색되어 있었다.
이제겨우 대여섯살먹어 보이는 아이는 '좀비'였다. 아무리 어려도 좀비는 좀비였다. 당장에 헤기에게 달려들어 다리를 뜯어 먹을지도 모른다. 그럼 꼼짝없이 좀비가 된다.
이젠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손 떨림을 애써 무시하며 헤기가 권총을 아이의 머리에 조준했다.
죽여야한다.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
지금. 당장!


"마어.마...."

"......"

"마...마."


좀비가 뭐라고 말하며 점점 다가왔다. 느린 속도로 엉금엉금 걸어온다. 좀비로 변하면 이성을 잃기 때문에 그들은 언어라고 불릴 수 없는 괴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이는 이성이 존재하는가? 사회에서 학습된 지식과 관습이 아직 존재하지않는 아이가 이성을 잃는다고 한다면.

헤기가 들었던 총구를 다잡자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쏴야한다.

하지만 총을 쏘면 큰소리가 들린다. 소음기를 부착할 수도 없는 골동품 총이라 적어도 윗층과 아랫층에 총소리가 날것이다.

이 마트안에 좀비가 눈앞에 어린 좀비 하나만이라고 장담할수 없다. 어른좀비가 더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총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배낭에 꽂아둔 빠루를 잡았다. 주차장 셔터를 비집고 들어올때 썼던 물건이다. 두손으로 힘껏 잡은 빠루를 점점 다가오는 아기좀비를 향해 내려쳤다. 





매장 뒷편 창고에서 다행히 먹을만한 것들을 주어담을 수 있었다. 한달은 버틸만한 식량을 배낭가득 담고 필요한 생필품을 챙기러 윗 매장으로 올랐다. 조명 하나없는 대형마트는 창문이 없어서 더 어두웠다. 건물 전면에 난 유리창은 좀비들 덕에 다 깨졌지만 매장 안으로 들어오는 입구는 전부 방화셔터가 내려져 어두웠다. 다행히 직원 통로는 창문이 나있어 전혀 안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손전등을 사용하면 좀비에게 들킬까 조심스레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건을 챙겼다.   

어두워 지기전에 돌아가야했다. 좀비가 생기고 사람들이 도시에서 사라지자 밤이 일찍 찾아왔다. 전기는 극히 일부 국가기관이나 군에서 낮에만 사용하고 남아있는 일반인들은 자가발전기를 사용했다. 그것도 남은자들중에서 돈있는 자들이나 사용한다. 또한 밤에 전기를 썼다간 수십명의 좀비에 둘러쌓인 자택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쨍그랑!

서두른 나머지 매대에서 물건을 떨어트렸다. 하필이면 철제로 된 물건이라 마트 바닥에 뒹굴면서 큰소리가 울려 퍼졌다.
낭패다. 입술을 씹으며 헤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달렸다. 소리를 들은 좀비가 오기전에 벗어나야한다.

낡은 운동화 밑창이 마트바닥에 쓸리며 내딛는 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배낭에 지친 다리가 후들거려 순간 넘어지고 말았다. 직원출입문을 바로 앞에두고 쓰러진 헤기가 신음을 내뱉었다.


'아, 젠장....'


그 순간 헤기의 머리위로 큰 그림자가 드리웠다.




필사적으로 몸을 돌려 뻗어오는 손길을 피한 헤기의 몸을 한 손으로 들어올린 남자는 거칠고 큰 손으로 헤기의 입을 막았다. 좀비가 아닌것일가? 어둠에 익숙해진 시력으로도 분간이 가질 않는 인영에 꼼짝없이 안긴 꼴이된 헤기를 끌고 직원통로로 들어가 귓가에 속삭였다. 


"쉿..."


조용하라는 뜻으로 작게 읆조린 그는 헤기를 더 끌어안고 재고로 가득쌓인 창고 상자더미 속으로 몸을 숨겼다.


"아....아.........."


순간 멀리서 들려오는 좀비들 특유의 소리에 헤기가 숨을 멈췄다. 다행히 직원통로 문을 열 생각을 못하는지 소리는 그 주위를 맴돌았다. 어두운 창고에서 극도로 예민해진 청각이 맞닿은 심장소리만을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그저 더이상 좀비의 신음이 들리지 않기를 기다렸고 또 기다렸다.


"이제 됐어."


헤기를 꽉 끌어안은 남자가 안심시켜 주자 긴장했던 몸이 풀려 쓰러질뻔 하였다. 어두워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그는 아직 어른이 아닌 헤기와 다르게 강하고 단단한 몸을 가졌음을 알수 있었다. 저런 사람이라면 분명 좀비와 정면으로 마주쳐도 무섭지는 않겠지. 어린 좀비를 보고도 겁에질린 자신과는 다르게.


"해가 질것같은데."


남자의 말에 손목으로 시선을 내렸다. 형이 고등학교에 들어간 기념으로 사준 스포츠 시계는 어두운 곳에서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오후 다섯시를 얼마 남겨두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해지기전에 돌아가는건 빠듯했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배낭에는 먹을것도 많았고 생필품도 구했고.
제일 중요한건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헤기의 계획에서 벗어난 일이 있었으니..


"얼마나 더 걸어야 해?"


마트에서 헤기를 구해준것 같은 남자가 자꾸 쫒아 오는 것이다.


"저기.....요..."

"어."

"왜 따라와.....요?"


남자는 헤기가 열어둔 비상구 계단을 통해 주차장으로 나오고 먼저 설치해둔 로프를 타고 내려가서 집으로 향하는 길까지 따라왔다.

배낭을 낑낑거리며 매고가는 헤기에게서 뺏어 한손에 들고 가는 남자는 밖에서 보니 거의 2미터는 될것같은 거구였다.
가방을 달라고 버티는 헤기에게 허크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손을 올리기에 한대 치는 줄알고 가방에서 손을 놓았더니 헤기의 머리를 흐트려 놓았다.
그런 모습에 저 덩치로 좀비들옆에 세워 놓으면 좀비들이 겁에 질려 도망갈 것 같은... 잘생긴 얼굴이다만 인상이 사나워 헤기는 존댓말을 썻다.
결코 쫀게 아니다.


"내가 집이 없어서."

"그래서.....요?"


불안한 기운에 헤기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허크가 입을 쭉 올려 웃었으나 웃는게 아니라 비열하고 험악한 인상을 지은것이라고 생각 되었다.


"신세좀 지고싶은데. 내가 너 구해줬잖아."


차마, 싫은데요. 라고 하지 못했다. 허크의 손에 들린 배낭은 소중했으니까.




-----


헤기는 나름 고소득층들이 살던 거주지에 있는 주택에서 지냈다. 전기와 수도가 끊겼지만 자가 발전기와 펌프로 얼마간의 전기와 물은 한정적으로 쓸 수 있었다.  높은 언덕에 지어진 부지로 웬만한 좀비는 쉽게 들어오지도 못한다.
또 이곳 거주지는 좀비가 별로 없다. 


"시발..."


언덕을 오르는 중에 허크가 험한말을 내뱉었다. 전혀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기에 헤기도 별 말없이 속으로 동의했다. 언덕 끝까지 올라가야한다고 했을때 허크의 표정이 볼만 했으니까.


"이거 한번 올라가면 다신 내려 가고 싶지 않겠는데."


반대로 한번 내려가면 절대 다시 올라가고 싶지도 않다. 이번엔 진짜 너무 배고파서 그런거였으니 다시는 내려가지 않을거다.

무사히 도착한 헤기와 허크가 숨을 고르고 잠시 쉬었다.
지하 주차장으로 통하는 셔터를 수동으로 개폐해 밑으로 사람이 드나들만큼 열었다. 헤기가 손쉽게 통과하고 허크가 땅에 바싹 붙어서 기다시피 들어왔다. 미리 정해진 만큼만 열리도록 설정해놔 어쩔 수 없었으나 허크가 옷이 바닥에 다 쓸려 더러워 졌다며 투덜거렸다.
셔터를 내린 헤기가 안으로 걸어가 집으로 통하는 문에 설치해둔 몇겹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비교적 넓은 실내에 허크가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 집의 모든 창문은 3중 철제보안장치로 닫혀있고 가운데 부분만 열어 밖을 확인할수 있었다.
때문에 헤기는 어두운 실내에서 촛불을 한두개 정도만 키고 지냈다.

거실에 놓은 커다란 쇼파에 허크는 거리낌 없이 누워 겉옷을 벗어 던졌다. 헤기는 주방으로 가서 마트에서 챙겨온 식량을 찬장에 열심히 정리했다.


헤기의 뒷통수를 열심히 바라보던 허크는 쇼파에 기대 고개만 돌려 집안을 휘이 둘러보았다. 밖에서 봤을 때 3층짜리 저택은  크고 넓었다.
설치된 보안 장치도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었다.
이정도 부자라면 어느 벙커에라도 들어 갈 정도는 되었을 텐데 굳이 이곳에서 사는 이유가 있을까.


"이봐."


허크의 부름에 배낭을 탈탈 털어 정리하던 헤기가 고개를 돌렸다.


"혼자살아?"

"......"


헤기는 말이 없었지만 질문에 대답은 충분했다. 좀비들이 우글거리는 시대에 어린소년이 가족도 없이 혼자 지낸다. 가족은 이미 좀비에 당했거나.....혹은.


"잘됐네. 내가 있으면 이제 심심하지 않을거아냐."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희석시킨 허크는 배가고프다며 막 정리가 끝난 주방으로 걸어왔다.
이미 오늘치 먹을것을 정해 뒀는지 식탁에 무언가 있었다.


-8가지 색깔로 골라먹는 재미가! 곰돌이 젤리 스위트 후르츠 칵테일-


"......"

"그것도 겨우 구석에서 찾아 낸거에요. 먹기싫으면 이리주세요."

"먹기 싫다고 안했는데."


냉큼 허크앞에 놔둔 젤리봉투를 뺏으려고 하는 작은 손을 쳐내며 허크가 곰돌이 다섯마리를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먹을것 가지고 투정부릴 상황은 아닌지라 허크는 나름 맛있게 젤리 한봉지를 먹었다.


언제나 어두운 실내덕분에 지금이 몇시인지 아는게 힘들었다. 전기가 없으니 유일하게 제역활을 하는 시계는 헤기의 손목에 찬 오토매틱시계 뿐이었다.


"손님방에서 자면 될거에요."


오래 사용하지않아 묵은방 냄새가 나긴 하지만 애초에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어 먼지가 조금 있는것 말고는 깨끗한 방이었다. 1층에 어느 방을 열어준 헤기가 이만 자라며 사라졌다. 피곤한 하루가 어둡게 졌다.





자고 일어나도 이게 아침인지 낮인지 아니면 아직 새벽인지 알길이 없었다. 창문을 열면 해결 될 일이지만 창문은 굳게 닫혀 철제로 된 보안창이 내려져 있다.
열고 싶어도 여는 방법을 모르는 허크로썬 건들어서 피보는 것보다 건드리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실로 나오자 헤기가 2층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한손에 든 수건을 허크에게 내밀었다. 축축히 젖은 수건을 든 허크가 멀뚱히 쳐다보자 헤기가 씻으라구요. 하며 새 칫솔과 치약도 건네주었다. 물한컵과 함께.

수도가 끊겨 물이 부족하다보니 억지로 지하에서 끌어온 물을 수동정수기로 정수시켜 마시고 남은물은 씻는데 사용한다. 하지만 헤기 혼자쓰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물이라 몸은 수건을 적셔 사용한다.

허크는 대충 수건으로 얼굴을 비비고 오랜만에 써보는 면도칼로 면도도하고 거울앞에서 썩소도 지어보았다. 흠. 누군지 모르지만 이렇게 잘생겨도 되는건지. 좀비들마저 반해서 따라오면 큰일이야. 큰일.


화장실에서 벌어지는 자뻑의 쇼를 알길이 없는 헤기는 어제 마트에서 찾은 가루로 스프를 만드는 중이었다.
먹는 입이 두배가 되니 생각했던것보다 식량의 소모가 빨랐다.
 다음 구호물품이 언제 올지 모르는 때인데 저 덩치만 큰 식충이를 언제 내쫒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때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얼굴에 그만 놀라 넘어질뻔 했다. 이번에도 허크가 한손으로 헤기의 허리를 잡아 넘어지지않게 받쳐주었다.

얼굴이 맞닿아 숨결도 느껴질 정도라 헤기가 먼저 고개를 휙하고 돌렸다.





-----


"닷새안에 나가줬음 좋겠어요."

"매정하네."

"........허크...가 구해준건 고마운 일이지만 여긴 원래 저 혼자 살던곳이라 이런식이면 오래 못버텨요."


마주앉아 맑은 스프를 떠먹으며 헤기가 운을 띄웠다.
혼자서 생활해도 모자란 식수에 음식을 둘이서 그것도 건장한 남자와 나눠 써야하니 부족한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니 도와준 값을 치루면 나가달라. 라는 말이었다.


"어제부터 궁금했는데 어린애 혼자서 좀비때문에 이렇게 살바엔 벙커에 들어가는 편이 낫지 않아? 거긴 말들어보니 거의 지하도시처럼 되어있다고 하던데."


국가가 핵전쟁을 대비해 지어놓은 대도시급 크기의 초대형 지하벙커는 좀비바이러스가 세상에 나타나자 다른 의미로 빛을 발했다.
거대한 건물이 미로처럼 얽힌 도시로써 들어간 사람들 말로는 지하에 위치한 또 다른 세계. 좀비로 부터 안전한 철의 요새. 지상에 남은 사람들의 말로 낙원.


"일부러 안 들어 간거에요."

"왜?"


벙커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차고 넘쳐 들어가는 순번마저  대기표를 뽑아 기다리고 주거권을 얻으려 거액의 돈을 쓰거나 살인이 벌어 지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건 나라 윗대가리들에게나 해당 되는 일이었고 일반시민들은 천문학적인 입주비도 좀비를 대항하는데 필요한 전문인력도 없었으니 그저 지상에서 벙커에서 만들어지는 구호물품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 어린 아이는 일부러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한다.
좀비가 당장이라도 자길 물어서 좀비가 되는 공포를 달고 살면서 먹을게 없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마트에서 식량을 구해오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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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넬은 뛰어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반대로 뛰어난 오감 덕분에 정신이 미쳐 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그를 위해 태어난듯 가이드가 존재했고 센티넬은 가이드 없이는 살 수 없었다. 폭주 했을 때 가이드가 없어 일찍 생을 마감하는 센티넬도 많았다.

각인.
로맨틱 하면서도 서로를 올가묶는 사슬이라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센티넬만의 생각이었다.
센티넬은 가이드 없인 살 수없지만 가이드는 센티넬 없이 살 수 있기 때문에.


허크는 아주 강한 센티넬이었다. 강하면 강할 수록 정신을 컨트롤 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센티넬들은 자신만의 가이드를 만들어 곁에 두었다.
 각인을 하면 평소보다 더 쉽고 양 많은 가이딩을 받을 수 있으니 대부분의 센티넬들은 가이드와 각인을 맺고 가이딩을 받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허크는 가이드를 옆에 두지도 각인을 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러지 않았었다.





등이 뜨겁다. 가슴이 짖눌러 답답한 숨소리를 내었다. 눈을 뜨려 했으나 눈꺼풀이 닫혀 열리지 않았다. 가까스로 몸을 움직이자 등에 닿던 뜨거운 것이 살짝 떨어져 나갔다. 일어나고 싶어요. 라는 요구를 담아 헤기가 손을 살짝 들어 올리자 뜨거운 손이 헤기를 잡아 올렸다. 등에 베개가 닿고 차가운 유리컵이 입에 닿았다. 눈이 떠지지 않으니 헤기가 감각으로 유리컵을 입술로 물자 차가운 물이 메마른 입을 적혔다.

"허어....."


말을 꺼내려는데 목이 갈라지는 쇳소리가 났다. 잔뜩 잠겨서 헤기 자신의 목소리인지 분간이 가지않을 생소한 소리가 나왔다. 놀라 눈을 반쯤 뜨니 그제야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허크와 눈이 마주쳤다.


"......."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허크가 아무말이 없으니 헤기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지난밤 허크는 잔뜩 폭주한 상태로 정신이 없었다. 자신이 이름을 부르고 가이드가 아니라고 소리쳐도 허크는 가이딩을 받길 바라는 센티넬처럼 헤기를 물어뜯고 만지고 안았다. 헤기도 센티넬이니 센티넬이 폭주 했을때를 어렴풋이 느낄수 있었다. 그들은 무의식으로 날뛰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시라도 빨리 가이딩을 받길 원했다. 센티넬이 폭주하면 자신의 몸에 흐르는 혈관의 소리까지 들리는 감각에 정신을 잃는다고 했다.
손목을 내려보니 붉은 멍이 손자국 그대로 피부에 남았다. 손가락으로 살짝 쓸어 내리고 있는데 불연듯 허크가 입을 열었다.


"각인 됐어."


헤기가 방금 들은 말을 이해하지 못한지 고개만 들어 허크의 눈을 쳐다보았다. 뭐라구요..?


"너랑. 내가 각인이 됐다고."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준 허크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시원한 이마가 한눈에 들어오자 그제야 헤기의 동공이 커지며 잔뜩 흔들렸다. 각인이라니? 각인? 지금 무슨소리를 하는거야?


"....나도 센티넬이고 허크도 센티넬인데 각인이라니 말도 안돼요. 센티넬이랑 가이드사이에서만 할 수 있는 각인인데 그게 됐다구요? 느껴지지도 않고 달라진게 없는데 각인이라니......"

당황한 헤기가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럼......내가 가이드에요....?"


헤기의 눈빛은 제발 맞다고 하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았다. 제발.제발.



"아니, 센티넬 맞아."

"지금 나랑 장난해요?"


인상을 찌푸리고 헤기가 짐짓 노한 목소리를 내었다. 눈을 찌푸렸지만 바로 앞에 서있는 아무것도 입지않은 허크의 상체에 감겨진 붕대는 잘만 보였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지금 사람 강간해놓고 놀리는건지 허크는 태연했다. 일반 사람에겐 강간이라 칭할 일이었지만 허크는 센티넬이었으니 폭주를 잠재우기 위해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헤기는 그게 웬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허크가 헤기가 그러거나 말거나 손을 얼굴에 대고 잠시 생각하는듯 이마를 손가락으로 팅겨냈다. 아! 하는 말과함께.


"한가지 가설이긴 한데 센티넬과 센티넬 사이에서는 아기가 만약에 임신되도 태어나는게 불가능 한건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래, 그 자연의 법칙같은걸 깨고 태어나 살아난게 너라는건 이 대륙 누구도 모를리 없을거야. 하지만 넌 태어났고 그 이유를 아무도 모르지. "



그 이유를 알았다면 이미 헤기는 수명의 동생들과 수백명의 조카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허크가 잠시 말을 고르는가 싶더니 이어서 이야기를 꺼냈다.


"방금 말했지만 가설이야. 센티넬이 만약 센티넬의 아이를 임신했다면 그 아이는 아마 태어나기도 전에 뱃속에서 미쳐 죽어버릴꺼야.  센티넬끼리는 무의식중에 기싸움을 벌이고 자신의 영역에서 몰아낼 것이 분명한데 짐승보다 예민한 태아가 아주 강한 센티넬의 오감으로 센티넬 어미의 뱃속에서 열달을 채우기엔 지옥과도 같겠지. 가이드거나 일반인이라면 아이가 센티넬이어도 기로 짖누르거나 몸에서 다른 센티넬의 존재를 거부하진 않을거아냐. 하지만 품은 사람이 센티넬이라면? 한줌의 가이딩도 받지 못하고 어미의 센티넬에 눌려 죽어버릴껄."

"그렇게 따지면 왜 센티넬과 센티넬 사이에서만 일반아이도 가이드도 태어나지 않는거죠...."

"그러니까 네가 특별한거겠지."

"그럼 난 센티넬이자 가이드 였기 때문에 살아난거라고요? 센티넬로서 능력도 약하지만 있고 기가 느껴지는것도 다들 센티넬이라고 했는데."



헤기가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가이드 였기 때문에 태어날 수 있었다고? 그럼 이 느껴지는 자신의 기운은 뭐란 말인가. 한번도 출신에 대해 의문을 가져보지 않았다. 가문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받고 살아도 자신은 센티넬로 대우를 받았다. 유일한 업적. 케르가문 의  결과이자 미래. 바라는 것과는 다른 약하고 별볼일 없는 센티넬. 하지만 단 한번도 자신이 가이드 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아온게 17년이었다.


"만약 센티넬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센티넬이자 가이드라면 자아가 없는 때에도 자기몸을 스스로 가이딩 할 수 있으니 생존 할수 있었겠지. 나도 말하면서도 웃긴데 헤기 넌 센티넬이 맞아. 각인하고 나니 더 확실하게 느껴지네. 하지만 가이드인것도 맞아. 나랑 각인했으니까."


숨을 쉬는것도 잊을 정도로 느껴지는 센티넬에 헤기가 눈을 돌렸다. 전 보다 더 느껴지는 허크의 감각에 드문드문 끊겨 기억하지 않으려 하던 지난밤이 떠오를 정도였다.


"......허크는 날 처음 보곤 가이드라고 했죠."


눈을 마주보고 시선을 올가맸다. 헤기는 허크에게 흘러들어오는 기분을 느꼈다. 공명하는 심장소리에 저 사람과 각인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건 순식간이었다. 창문이 없어 캄캄한 방안에서 등불에 시선을 마주하고 있으니 허크의 기운이 방 전체에 감싸여 진것이 느껴졌다. 따듯하고 어딘지 서글프고 때로는 불과 같고 조금만 기울어도 흘러내려버릴 둑과같은 애정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왜 그랬어요."

"키스를 했더니 가이딩이 되더라고."


허크가 별것 아니라는 투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너 단한번도 센티넬들에게 우연히 가이딩 해본적 없냐는듯이.


"처.....첫키스 였으니까요!"



단번에 이유를 이해한 허크가 웃자 헤기가 베개를 던져버린건 그 이후다.







-------



"갑자기 몸에서 소름이 돋는데요."

"아직 준비가 덜 끝난 텔레포트를 타고 온 후유증 일수도 있습니다. 오늘 밤이 잘 지난다면 몸을 살펴봐야 겠습니다."

"글쎄. 사실 내 운명이 오늘 끝날지 내일 끝날지 잘 모르겠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알아요."



수도 지하수로를 은밀하게 걷는 중이라는걸 잊은듯이 리시타가 두 팔을 감싸며 소름이 돋는다고 떨었다. 횃불없이는 앞이 보이지 않고 축축하고 습한 수로를 기다시피 걷는터라 카이가 꺼내든 모포를 망토처럼 몸에 한겹 더 둘렀다.


"허크는 잘하고 있을테니 우리도 잘 해내야 겠죠. 그 케르 애송이를 살리는 값을 받아내려면."

"만약 모든일이 끝난다면 케르가문의 생존자인 그 아이가 우리 세력이 되줄 수도 있습니다."


카이의 말을 들으며 앞장서던 리시타가 높은 천장이 나오자 발길을 멈췄다.
그러기인 너무 어리고 힘이 없다는 말을 삼키고  리시타가 웃었다.


"다 왔습니다. 대성당에."





------


 대부분의 백성들은 왕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하물며 얼굴조차 모른채 일생을 보낸다. 귀족들도 왕이 누구던 자신의 부만 지켜준다면 뒷간에서 오물을 먹는 돼지가 왕위에 올라도 머리를 조아릴 족속들이었다.
이십년전 왕국에서는 흉한 사건이 일어났다. 왕가 일가가 어느날 마른하늘에 살해를 당했다. 왕과 왕비는 그자리에서 죽고 왕자와 공주는 도주하다가 살해를 당했다. 왕의 피를 이어받은 가문도 몰살 당했다. 수도에서는 한동안 비릿한 쇳내가 나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비릿내가 나는 식수를 이야기 했지 천하의 왕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어느날 갑자기 새로운 왕이 왕좌에 앉았다. 대신들과 귀족들은 왕이 사라진것을 알았다. 하지만 모두들 입을 다 물었다. 북으로는 마족이 동으로는 반란군이 남으로는 이민족이 설치는 때에 왕의 부재란 나라의 약점을 훤히 밝히는 꼴이었다.

새로운 왕은 자신을 전 왕의 먼 친척으로 소개하였다. 이미 왕의 친가와 외가는 몰살 당했으므로 진위를 가릴 틈도 없이 왕관을 쓰게되었다. 그는 이런 때에 여신이 나타나 인간에게 승기를 세워줄 것이라 믿는 독실한 신자였다. 전에는 별로없던 신전이 생겨나고 성당들이 휘잉찬란하게 들어섰다. 신전에서는 여신의 대리자라는 무녀들이 있었고 성당에서는 신관들과 교주라 불리는 자들이 사람들을 현혹했다. 여신님께 기도를 올리고 믿음을 구하면 모두가 에린에 갈 수 있다고 전했다.

오래된 예언에 따르면 여신은 인간들이 고통에 휩싸여 있을때 마다 강림하여 구원해주었다. 축복을 구할때나 안위를 걱정할때 이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여신의 이름을 걸었다.

"여신이 함께 했으면 이딴 쓰레기들이 설쳤을리가 없지."

칼이 피를 흡수한듯 붉었다. 단단한것을 금속이 부수는 소리에 귀가 간지러웠다. 발밑에서 꿈틀 거리는 것을 발로 밟았다. 금실로 수놓는 하얀 실크 옷이 제색이 무엇인지 모르게 더러워져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몇번 더 숨을 쉬던 것이 끊기자 리시타는 급한게 끝났다는 듯이 후련한 한숨을 내쉬며 한쪽 손목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성으로 갑니다."

길고 긴 왕자의 도주가 끝나는 밤이었다.







헤기는 밖에서 나는 소리에 표정을 굳히고 서둘러 자신에게 옷을 입히고 망토를 두르게 한 후 복도를 달리는 허크의 손을 놓으려 했으나 허크가 이젠 자신을 들어 품에 안고 달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윽..! 지금 어디가는 거에요? 아니지, 여긴 어디에요?"


발걸음을 땅에 내딪을 때마다 온몸이 비명을 질러 헤기가 소리쳤으나 허크가 '조용히.' 하는 바람에 합죽이가 되버렸다. 말 잘듣는 강아지 취급도 아니고.
달리는 곳은 어느 건물 복도 같은데 불도 켜지지 않고 창문이 없으니 어디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허크는 그곳을 재주도 좋게 달려 어느 철문 앞으로 섰다. 문을 열자 밤이었는지 달이 떠있었다. 건물의 문이라기엔 사방이 풀숲에 나무로 가리워져 풀벌레 소리만 났다. 허크가 주위를 살피더니 말했다.


"놀라지 말고 들어."


이미 충분히 놀랐지만 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넌 지금부터 인질이야."


자기 이름 알고나서부턴 인질 취급이었으면서 언제 안그랬냐는 듯이 헤기가 쳐다보자 허크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숨을 가다듬었다.


"케르가문을 이리로 유인할 미끼로 널 썼어."

"처음부터 그런이유로 날 납치했어요?"

"아니, 그건 아니야. 하지만 네가 케르인걸 알고 리시타랑 딜을.......암튼 지금 수도에서 상당수의 케르가문 병력이 여기에 있으니 기회다 싶었지. 어짜피 일어난 일 양념 좀 친다 셈치고."



헤기를 땅에 내려놀 생각을 하지 않은채 허크가 빠르게 달려갔다. 점점 더 크게 들리는 폭음과 냄새에 헤기가 고개를 돌렸다. 저멀리서 케르문양을 한 마법사들이 잡혀있었고 또 한편에서는 일반병사가 포로로 잡혀 있었다. 허크에게 힘없이 안겨있는 자신을 본 가문의 마법사가 헤기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헤기 케르!!! 설마 배신 한거냐!"


 헤기가 놀라 숨을 멈추자 허크가 끌어안은 팔을 더 굽혔다. 마법사 주위에 있던 반란군 센티넬이 마법사의 턱을 쳐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허크에게 안겨있던 헤기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배신? 배신은 누가 했더라. 잘난 케르가문이 교황청 뒷꽁무니만 따라다니면서 하던짓아닌가?"


헤기를 안전한 곳에 내려 놓은 허크가 눈짓으로 헤기옆에 서있던 센티넬에게 천막을 가리켰다. 눈치컷 헤기를 천막에 쑤셔놓은 센티넬이 헤기가 나오지 못하도록 앞을 지켰다. 헤기가 천막에 들어간 것을 확인 한 허크가 마법사옆에 있던 화로에서 쇠꼬치를 꺼냈다.  벌겋게 달아오른 쇠가 눈가에 들이밀어지자 얼굴에 피가 몰리던 마법사가 입을 냉큼 다물었다.


"니들 마법사가 잘하는짓 있지. 전서구를 날려라. 헤기 케르를 찾았으며 속히 찾으러 이곳으로 전군을 이끌고 오라고."

"네 이놈!!"

"전서구를 쓸 팔만 있어도 상관없으니까 눈은 필요 없겠군."


생살을 지지는 소리와 어떠한 것이 터져 증발하는 끔직한 소리가 들렸다. 천막 안에서 밖에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마법사의 찢어지는 비명은 생생하게 들렸다. 헤기는 차마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몸을 돌려 두귀를 막았다. 잡힌 포로들에게서 원성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거의 죽어가는 마법사에의 손을 빌어 전서를 대충 쓴 허크가 헤기를 찾았을 때 헤기는 한구석에서 구역질을 참았다.  싸우는 것을 배우고 사관학교를 다녔지만 헤기는 그런것에 익숙해 지지못했다. 마족은 임무를 다니면서 몇번 베어본적이 있으나 사람을 죽여본 적은 없었다. 눈앞에 저 남자는 그 무엇도 쉽게 하고 아무렇지 않아 한다.


"그들이 올거야. 넌 제일 앞에서 인질처럼 묶여 있으면 돼."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설명해줬으면 했다. 헤기는 그저 이틀안에 꽃을 찾으러 오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인데 어느새 시발점이 된듯 운명이 움직였다.

벤체너는 제일 높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깊고 긴 협곡을 이어 평원을 둘러쌓았다. 헤기가 올랐던 곳은 언덕쯤 된다는듯한 위용에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더 높은 산 정상은 만년설로 뒤덮여 있었고 그아래는 매마른 석회암석 절벽이 주를 이루었다.  협곡 아래에서 바라보니 멀리서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큰 무리가 있었다. 길은 협곡 아래로 흐르는 시내를 따라오는것 밖에 없었으므로 그들은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건물을 나왔던 때는 밤이 짙었으나 이젠 푸르스름한 빛에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떠오르는 태양이 고개를 드밀때 반란군이 매복해 있던 협곡에 설치된 마법진이 빛을 뿜었다. 그대로 주저앉은 절벽에 깔린 군대가 이득고 퍼붇어진 공격에 전멸한것은 수도에서 일어난 일이 케르본가에 전해지기 수초 전이었다. 
 

사실 헤기 케르를 반란군이 납치한것은 예상하지 못한 수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곳에 보낸 이유도 헤기를 구실로 삼아 반란군을 멸시킬 생각을 가진것은 오히려 케르였다. 납치당했다는 전갈을 급하게 들이 닥쳤을 때 웃음을 피운건 케르가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들어온 소식은 반란군 기지에 울리는 케르의 축포가 아니라 수도에서 보내온 전갈이었다.
'반란군이 수도에 교황청에서 교주를 살해.'
왕과 교황청을 꼬득여 반란군을 뿌리 뽑을 수 있다는 기회인 만큼 왕국군 뿐만아니라 가문의 내노라 하는 마법사들과 사병들을 전부 보낸터라 수도에는 소수의 경비병들 뿐이었다. 모든 관심이 반란군기지에 쏟아진 틈에 허를 찔러 수도로 침입한 반란군에 케르가문은 땅을 쳤다.
당했다.





------

최대한 허크와 헤기가 꽁냥대게 하고싶은데 생각해뒀던 배경스토리도 풀고싶은 욕심에 어두운 스토리설명만 주구장창 해대서 재미가 없으셨을거라 생각대네요. 다음화엔 분위기가 밝아질꺼에요. 아마도.....

헤긴 센티넬도 맞고 가이드도 맞고.
이 이야기는 다음화에 좀 더 풀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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