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쥔 구식권총을 연신 확인하였다. 예전이라면 거들떠도 안볼 구형모델의 총이라도 있어야 안심이다.

지난 구호물품 이후 삼주동안 군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여기서 연락할 수단이 거의 없으니 벙커에서 오는 연락이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대우로 벙커 밖에서 생활하는터라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제 저녁 마지막 건빵을 물에 불려 스프로 마신게 전부다.
사람이 극도로 허기가 지면 앞뒤가 안보인다 했던가. 지난밤 내내 꼬르륵 거리는 배를 쥐어잡은 끝에 집안을 뒤져 무기란 무기는 전부 챙겨 조심스레 밖으로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류는 좀비바이러스로 멸망했다.

어느날 갑자기 시벌건 눈빛을 한 사람들이 다른사람들에게 달려드는 일이 일어났다. 그들은 이성이 남아있지 않아 보였으며 일반인보다 빠르고 강한 힘을 지녔다. 관절이 꺽이는 듯한 기괴한 움직임과 사람에게 달려들어 공격하는 행동에
모두들 그들을 '좀비'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특이성간질환자같은 병명을 내리던 의사들도 갑자기 멀쩡하던 사람이 돌변하는 이상현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이것을 '전염병'이라고 결론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엔 이미 픽션으로 소위 좀비물이라는 영화나 소설이 많이 있었다. 등장하는 좀비들은 사람들을 공격해 물었고  물린 사람들은 좀비가 되었다. 현실이 된 좀비바이러스는 인간의 상상력을 칭찬하듯 똑같이 물리면 좀비로 변했다.
좀비에게 물린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좀비가 되기전에 자살하거나 미쳐서 사람들을 해하고 다녔다.
좀비에게 물려도 좀비가 된다는 사실을 알린 국가는 서둘러 감염된자들을 격리시키고 사살해야함을 밝혔다.
하지만 순식간에 퍼진 좀비는 대처할수 없을 정도로 많아져 도시의 큰길가는 좀비시체와 그들이 일반인을 공격해 만들어진 새로운 좀비가 가득 매꿨다.

대피소 조차 좀비가 침입하여 사람들을 공격하자 국가는 강책을 내놓았다. 핵 전쟁을 대피해 만든 초거대 벙커에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적이고 사람은 너무 많았다.
결국 좀비바이러스를 위해 중요한 학자.연구가.교수들이 1순위로 들어갔으며 의사같은 전문직업군이 2순위 중요인사들과 나머지 돈많은 사람들이 입주하자 밖에는 일반시민들과 빈민층들이 남았다.

남은자들은 살기위해 몸부림쳤으나 결국 좀비로 변했고 군에게 사살당했으며 현재진행형이다.




셔터가 쳐진 대형마트건물까지 무사히 도착하자 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지금까지 무사했다고 안심하면 안된다. 이안에 좀비가 있을지 없을지모른다. 만나게 되면 즉시 머리에 총을 쏴야 헤기 자신이 산다.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기 위해 발꿈치를 들고 건물 뒤쪽으로 향했다. 마트는 대부분 지상 꼭대기 층부터 몇층이상을 주차장으로 쓴다. 건물을 빙둘러봐도 직원통로는 철제물로 막혀있고(일부러 가져다놓는듯하다) 지상창고는 강화 셔터가 내려져있고 그앞에 대형트럭이 가로로 문을 막고 있었다.

다행이 이곳 마트는 지상주자창을 올라가는 통로를 환기를 위해 2층높이부터 야외로 뚫어놔 들어가기 쉽다는 것이다. 
근처에 혹시 좀비가 있을까 조심히 이동한 헤기는 가져온 와이어를 땅에 깊이 박고 갈고리를 돌렸다. 제 한몸 단 몇초만 버티면 된다.
몇번의 시도끝에 단단하게 철고리가 난간에 박혔는지 확인한 헤기는 줄을 잡고 멀리서부터 있는힘껏 건물로 뛰어 올랐다. 단숨에 줄을 타고 난간에 올라 굴러떨어졌다. 후우. 해냈다는 안도감과 방금전 점프에 그나마 남아있던 기력을 써버려 어지러웠다. 얼른 마트에서 먹을걸 구해서 돌아가자.


큰 배낭을 매고 한손에 총을 든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긴장되서 미칠듯이 울리는 심장소리가 주차장 전체에 울리는 착각이 들었다. 몇대 남아있지않은 먼지쌓인 차들을 제외하고 주차장 내부는 휑했다. 좀비가 어디 숨어있을만한 곳이 없다며 내심 안심했다.

입구에 방화셔터가 내려져 들어갈수 없었다. 다행히 옆에 직원통로 비상구가 있어서 장비로 문을따고 들어갔다.
식료품매장이 있는 층까지 내려와 직원통로를 사용해 문을 열었다. 방화셔터는 직원통로에는 존재하지 않아서 손쉽게 헤기는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오는 내내 깜깜한 계단을따라 통로를 찾느라 잔뜩 긴장되서 땀을 바지에 몇번이나 닦았는지 모른다.

식료품 매대는 거의 텅 비어있었다. 전쟁이 일어난듯 사람들이 슈퍼와 마트등을 털었기 때문이다. 이곳도 마트사장이 벙커에 들어가 문을 닫은곳이다. 헤기는 그나마 남아있는 먹을것들을 배낭에 넣었다. 마트는 건물내부를 따라 빙둘러 직원전용 복도가 있고 그 복도를 따라 창고로 쓰는 높은 선반들이 있다. 또는 매대에 마저 진열하지 않은 물건들이 박스로 쌓여있다. 헤기는 그곳엔 좀 물건이 남아있겠거니 싶어 가려는데 어디서 소리가 들렸다.


먹을게 눈에 보이니 신나서 그만 잊고 있었다. 이 안에 좀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헤기는 서둘러 권총을 쥐고 한걸음 한걸음 물러섰다. 저 처럼 배가 고파 온 사람이길 빌었다. 헤기는 총도 제대로 쏴본적 없는 일반인이다. 원래는 벙커로 가야했지만......

또독또독 뭔가 조그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방아쇠에 걸친 손가락이 달달 떨렸다. 질척한 액체가 뭍은 무언가가 끌리는 소리와 함께 매대 중앙에 선 헤기의 눈에 조그만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


한눈에 봐도 그것은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다 썩어가는 팔과 다리. 옷에 뭍은 얼마나 오래된건지 모를 피자국은 본래 옷감의 색이 무엇인지 알수 없게 변색되어 있었다.
이제겨우 대여섯살먹어 보이는 아이는 '좀비'였다. 아무리 어려도 좀비는 좀비였다. 당장에 헤기에게 달려들어 다리를 뜯어 먹을지도 모른다. 그럼 꼼짝없이 좀비가 된다.
이젠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손 떨림을 애써 무시하며 헤기가 권총을 아이의 머리에 조준했다.
죽여야한다.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
지금. 당장!


"마어.마...."

"......"

"마...마."


좀비가 뭐라고 말하며 점점 다가왔다. 느린 속도로 엉금엉금 걸어온다. 좀비로 변하면 이성을 잃기 때문에 그들은 언어라고 불릴 수 없는 괴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이는 이성이 존재하는가? 사회에서 학습된 지식과 관습이 아직 존재하지않는 아이가 이성을 잃는다고 한다면.

헤기가 들었던 총구를 다잡자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쏴야한다.

하지만 총을 쏘면 큰소리가 들린다. 소음기를 부착할 수도 없는 골동품 총이라 적어도 윗층과 아랫층에 총소리가 날것이다.

이 마트안에 좀비가 눈앞에 어린 좀비 하나만이라고 장담할수 없다. 어른좀비가 더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총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배낭에 꽂아둔 빠루를 잡았다. 주차장 셔터를 비집고 들어올때 썼던 물건이다. 두손으로 힘껏 잡은 빠루를 점점 다가오는 아기좀비를 향해 내려쳤다. 





매장 뒷편 창고에서 다행히 먹을만한 것들을 주어담을 수 있었다. 한달은 버틸만한 식량을 배낭가득 담고 필요한 생필품을 챙기러 윗 매장으로 올랐다. 조명 하나없는 대형마트는 창문이 없어서 더 어두웠다. 건물 전면에 난 유리창은 좀비들 덕에 다 깨졌지만 매장 안으로 들어오는 입구는 전부 방화셔터가 내려져 어두웠다. 다행히 직원 통로는 창문이 나있어 전혀 안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손전등을 사용하면 좀비에게 들킬까 조심스레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건을 챙겼다.   

어두워 지기전에 돌아가야했다. 좀비가 생기고 사람들이 도시에서 사라지자 밤이 일찍 찾아왔다. 전기는 극히 일부 국가기관이나 군에서 낮에만 사용하고 남아있는 일반인들은 자가발전기를 사용했다. 그것도 남은자들중에서 돈있는 자들이나 사용한다. 또한 밤에 전기를 썼다간 수십명의 좀비에 둘러쌓인 자택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쨍그랑!

서두른 나머지 매대에서 물건을 떨어트렸다. 하필이면 철제로 된 물건이라 마트 바닥에 뒹굴면서 큰소리가 울려 퍼졌다.
낭패다. 입술을 씹으며 헤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달렸다. 소리를 들은 좀비가 오기전에 벗어나야한다.

낡은 운동화 밑창이 마트바닥에 쓸리며 내딛는 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배낭에 지친 다리가 후들거려 순간 넘어지고 말았다. 직원출입문을 바로 앞에두고 쓰러진 헤기가 신음을 내뱉었다.


'아, 젠장....'


그 순간 헤기의 머리위로 큰 그림자가 드리웠다.




필사적으로 몸을 돌려 뻗어오는 손길을 피한 헤기의 몸을 한 손으로 들어올린 남자는 거칠고 큰 손으로 헤기의 입을 막았다. 좀비가 아닌것일가? 어둠에 익숙해진 시력으로도 분간이 가질 않는 인영에 꼼짝없이 안긴 꼴이된 헤기를 끌고 직원통로로 들어가 귓가에 속삭였다. 


"쉿..."


조용하라는 뜻으로 작게 읆조린 그는 헤기를 더 끌어안고 재고로 가득쌓인 창고 상자더미 속으로 몸을 숨겼다.


"아....아.........."


순간 멀리서 들려오는 좀비들 특유의 소리에 헤기가 숨을 멈췄다. 다행히 직원통로 문을 열 생각을 못하는지 소리는 그 주위를 맴돌았다. 어두운 창고에서 극도로 예민해진 청각이 맞닿은 심장소리만을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그저 더이상 좀비의 신음이 들리지 않기를 기다렸고 또 기다렸다.


"이제 됐어."


헤기를 꽉 끌어안은 남자가 안심시켜 주자 긴장했던 몸이 풀려 쓰러질뻔 하였다. 어두워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그는 아직 어른이 아닌 헤기와 다르게 강하고 단단한 몸을 가졌음을 알수 있었다. 저런 사람이라면 분명 좀비와 정면으로 마주쳐도 무섭지는 않겠지. 어린 좀비를 보고도 겁에질린 자신과는 다르게.


"해가 질것같은데."


남자의 말에 손목으로 시선을 내렸다. 형이 고등학교에 들어간 기념으로 사준 스포츠 시계는 어두운 곳에서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오후 다섯시를 얼마 남겨두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해지기전에 돌아가는건 빠듯했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배낭에는 먹을것도 많았고 생필품도 구했고.
제일 중요한건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헤기의 계획에서 벗어난 일이 있었으니..


"얼마나 더 걸어야 해?"


마트에서 헤기를 구해준것 같은 남자가 자꾸 쫒아 오는 것이다.


"저기.....요..."

"어."

"왜 따라와.....요?"


남자는 헤기가 열어둔 비상구 계단을 통해 주차장으로 나오고 먼저 설치해둔 로프를 타고 내려가서 집으로 향하는 길까지 따라왔다.

배낭을 낑낑거리며 매고가는 헤기에게서 뺏어 한손에 들고 가는 남자는 밖에서 보니 거의 2미터는 될것같은 거구였다.
가방을 달라고 버티는 헤기에게 허크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손을 올리기에 한대 치는 줄알고 가방에서 손을 놓았더니 헤기의 머리를 흐트려 놓았다.
그런 모습에 저 덩치로 좀비들옆에 세워 놓으면 좀비들이 겁에 질려 도망갈 것 같은... 잘생긴 얼굴이다만 인상이 사나워 헤기는 존댓말을 썻다.
결코 쫀게 아니다.


"내가 집이 없어서."

"그래서.....요?"


불안한 기운에 헤기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허크가 입을 쭉 올려 웃었으나 웃는게 아니라 비열하고 험악한 인상을 지은것이라고 생각 되었다.


"신세좀 지고싶은데. 내가 너 구해줬잖아."


차마, 싫은데요. 라고 하지 못했다. 허크의 손에 들린 배낭은 소중했으니까.




-----


헤기는 나름 고소득층들이 살던 거주지에 있는 주택에서 지냈다. 전기와 수도가 끊겼지만 자가 발전기와 펌프로 얼마간의 전기와 물은 한정적으로 쓸 수 있었다.  높은 언덕에 지어진 부지로 웬만한 좀비는 쉽게 들어오지도 못한다.
또 이곳 거주지는 좀비가 별로 없다. 


"시발..."


언덕을 오르는 중에 허크가 험한말을 내뱉었다. 전혀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기에 헤기도 별 말없이 속으로 동의했다. 언덕 끝까지 올라가야한다고 했을때 허크의 표정이 볼만 했으니까.


"이거 한번 올라가면 다신 내려 가고 싶지 않겠는데."


반대로 한번 내려가면 절대 다시 올라가고 싶지도 않다. 이번엔 진짜 너무 배고파서 그런거였으니 다시는 내려가지 않을거다.

무사히 도착한 헤기와 허크가 숨을 고르고 잠시 쉬었다.
지하 주차장으로 통하는 셔터를 수동으로 개폐해 밑으로 사람이 드나들만큼 열었다. 헤기가 손쉽게 통과하고 허크가 땅에 바싹 붙어서 기다시피 들어왔다. 미리 정해진 만큼만 열리도록 설정해놔 어쩔 수 없었으나 허크가 옷이 바닥에 다 쓸려 더러워 졌다며 투덜거렸다.
셔터를 내린 헤기가 안으로 걸어가 집으로 통하는 문에 설치해둔 몇겹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비교적 넓은 실내에 허크가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 집의 모든 창문은 3중 철제보안장치로 닫혀있고 가운데 부분만 열어 밖을 확인할수 있었다.
때문에 헤기는 어두운 실내에서 촛불을 한두개 정도만 키고 지냈다.

거실에 놓은 커다란 쇼파에 허크는 거리낌 없이 누워 겉옷을 벗어 던졌다. 헤기는 주방으로 가서 마트에서 챙겨온 식량을 찬장에 열심히 정리했다.


헤기의 뒷통수를 열심히 바라보던 허크는 쇼파에 기대 고개만 돌려 집안을 휘이 둘러보았다. 밖에서 봤을 때 3층짜리 저택은  크고 넓었다.
설치된 보안 장치도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었다.
이정도 부자라면 어느 벙커에라도 들어 갈 정도는 되었을 텐데 굳이 이곳에서 사는 이유가 있을까.


"이봐."


허크의 부름에 배낭을 탈탈 털어 정리하던 헤기가 고개를 돌렸다.


"혼자살아?"

"......"


헤기는 말이 없었지만 질문에 대답은 충분했다. 좀비들이 우글거리는 시대에 어린소년이 가족도 없이 혼자 지낸다. 가족은 이미 좀비에 당했거나.....혹은.


"잘됐네. 내가 있으면 이제 심심하지 않을거아냐."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희석시킨 허크는 배가고프다며 막 정리가 끝난 주방으로 걸어왔다.
이미 오늘치 먹을것을 정해 뒀는지 식탁에 무언가 있었다.


-8가지 색깔로 골라먹는 재미가! 곰돌이 젤리 스위트 후르츠 칵테일-


"......"

"그것도 겨우 구석에서 찾아 낸거에요. 먹기싫으면 이리주세요."

"먹기 싫다고 안했는데."


냉큼 허크앞에 놔둔 젤리봉투를 뺏으려고 하는 작은 손을 쳐내며 허크가 곰돌이 다섯마리를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먹을것 가지고 투정부릴 상황은 아닌지라 허크는 나름 맛있게 젤리 한봉지를 먹었다.


언제나 어두운 실내덕분에 지금이 몇시인지 아는게 힘들었다. 전기가 없으니 유일하게 제역활을 하는 시계는 헤기의 손목에 찬 오토매틱시계 뿐이었다.


"손님방에서 자면 될거에요."


오래 사용하지않아 묵은방 냄새가 나긴 하지만 애초에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어 먼지가 조금 있는것 말고는 깨끗한 방이었다. 1층에 어느 방을 열어준 헤기가 이만 자라며 사라졌다. 피곤한 하루가 어둡게 졌다.





자고 일어나도 이게 아침인지 낮인지 아니면 아직 새벽인지 알길이 없었다. 창문을 열면 해결 될 일이지만 창문은 굳게 닫혀 철제로 된 보안창이 내려져 있다.
열고 싶어도 여는 방법을 모르는 허크로썬 건들어서 피보는 것보다 건드리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실로 나오자 헤기가 2층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한손에 든 수건을 허크에게 내밀었다. 축축히 젖은 수건을 든 허크가 멀뚱히 쳐다보자 헤기가 씻으라구요. 하며 새 칫솔과 치약도 건네주었다. 물한컵과 함께.

수도가 끊겨 물이 부족하다보니 억지로 지하에서 끌어온 물을 수동정수기로 정수시켜 마시고 남은물은 씻는데 사용한다. 하지만 헤기 혼자쓰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물이라 몸은 수건을 적셔 사용한다.

허크는 대충 수건으로 얼굴을 비비고 오랜만에 써보는 면도칼로 면도도하고 거울앞에서 썩소도 지어보았다. 흠. 누군지 모르지만 이렇게 잘생겨도 되는건지. 좀비들마저 반해서 따라오면 큰일이야. 큰일.


화장실에서 벌어지는 자뻑의 쇼를 알길이 없는 헤기는 어제 마트에서 찾은 가루로 스프를 만드는 중이었다.
먹는 입이 두배가 되니 생각했던것보다 식량의 소모가 빨랐다.
 다음 구호물품이 언제 올지 모르는 때인데 저 덩치만 큰 식충이를 언제 내쫒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때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얼굴에 그만 놀라 넘어질뻔 했다. 이번에도 허크가 한손으로 헤기의 허리를 잡아 넘어지지않게 받쳐주었다.

얼굴이 맞닿아 숨결도 느껴질 정도라 헤기가 먼저 고개를 휙하고 돌렸다.





-----


"닷새안에 나가줬음 좋겠어요."

"매정하네."

"........허크...가 구해준건 고마운 일이지만 여긴 원래 저 혼자 살던곳이라 이런식이면 오래 못버텨요."


마주앉아 맑은 스프를 떠먹으며 헤기가 운을 띄웠다.
혼자서 생활해도 모자란 식수에 음식을 둘이서 그것도 건장한 남자와 나눠 써야하니 부족한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니 도와준 값을 치루면 나가달라. 라는 말이었다.


"어제부터 궁금했는데 어린애 혼자서 좀비때문에 이렇게 살바엔 벙커에 들어가는 편이 낫지 않아? 거긴 말들어보니 거의 지하도시처럼 되어있다고 하던데."


국가가 핵전쟁을 대비해 지어놓은 대도시급 크기의 초대형 지하벙커는 좀비바이러스가 세상에 나타나자 다른 의미로 빛을 발했다.
거대한 건물이 미로처럼 얽힌 도시로써 들어간 사람들 말로는 지하에 위치한 또 다른 세계. 좀비로 부터 안전한 철의 요새. 지상에 남은 사람들의 말로 낙원.


"일부러 안 들어 간거에요."

"왜?"


벙커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차고 넘쳐 들어가는 순번마저  대기표를 뽑아 기다리고 주거권을 얻으려 거액의 돈을 쓰거나 살인이 벌어 지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건 나라 윗대가리들에게나 해당 되는 일이었고 일반시민들은 천문학적인 입주비도 좀비를 대항하는데 필요한 전문인력도 없었으니 그저 지상에서 벙커에서 만들어지는 구호물품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 어린 아이는 일부러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한다.
좀비가 당장이라도 자길 물어서 좀비가 되는 공포를 달고 살면서 먹을게 없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마트에서 식량을 구해오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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