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마수들은 100년 전만해도 서로 마주 할 일이 없었으며 각자세계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두 세계를 이어주는 문이 열려 문을 통해 나가 우연히 인간을 헤친 마수 한 마리만 아니었다면 수많은 사람과 마수가 죽은 전쟁이 일어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 전쟁에서 왕국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며 그 영웅이 마왕을 죽이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마왕이 죽자 세상에는 마력이 사라지게 되었다. 인간들은 마력을 쓰지 못해 마법사를 보기 힘들게 되었으며 마법이 사라진 대신 기술과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마왕을 잃은 마수들은 혼란스러움을 이끌고 자신들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다. 그 이후에도 여전히 문은 열려있지만 인간도 마수도 서로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는다는 불가침조약이 생긴지 100년째였다.
1.
“최종합격 테스트요?”
내 옆에 앉아있던 헤기는 평소처럼 멍청한 얼굴로 물었다. 나도 겉으로 표는 안냈지만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이미 한달 전 정식사원으로 인정 받은게 아니었나. 헤기 말고도 이 주 전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들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으로 관리자를 바라봤다.
“우리 회사는 어느 정도 회사에 적응할 수 있을 만한 시간을 둔 뒤 최종테스트를 치룬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임시 사원 이었다는 소리였다. 회사 이름이 ‘길드’라고 할 때부터 알아봐야했나. 사원들을 길드원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부터가 이상했긴 했지만. 어쩐지 회사명성에 맞지 않게 길 안내라거나 잃어버린 물건 찾아주기, 도망간 애완동물 잡아오기 등등 자질구레한 의뢰만 맡기더라니! 왕실군도 이정도로 까다롭게 뽑지는 않겠다. 말로는 테스트라고는 하지만 실상 사원이 되고 겪는 첫 정식 의뢰임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 테스트란게 뭐지?”
*
“..........허크!”
잠시 생각에 잠겨 앉아 있던 내 앞으로 헤기 녀석이 얼굴을 들이밀며 내 이름을 연신 부르고 있었다. 뭐하고 있던 거냐며 로비에 일행들이 모여 있으니 빨리 가야한다고 나를 재촉했다. 정식 길드 원이 되려면 테스트를 치러야 한다고 며칠 전 들었다. 이번 신입 길드 원들에게 주어진 그 테스트라는 것은 국경근처에 위치한 광산에서만 생산되는 희귀광물을 구해오는 것이었다. 광산이 위치한 곳은 위험하기로 소문난 지역이면서도 광물 자체가 보안이 철저한 가운데 있기 때문에 가더라도 구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서둘러야 한다는 녀석을 앞세워 로비로 내려가니 빈말은 아니었는지 모두들 짐을 챙기고 대기 중이었다.
“어디 있다가 이제오세요.”
선임 중 한명인 이비가 특유의 나긋한 목소리로 덕분에 늦는다고 꾸짖으며 어서오라고 손짓했다. 그녀의 조금 진한 갈색 눈이 살짝 웃음 지어보였다. 갑자기 와서 대뜸 광산에 가야한다 말했던 그녀와는 대조적인 무뚝뚝한 선임 길원 카이는 다부진 체격에 말수가 적고 눈매가 날카로웠는데 그에게선 특유의 동쪽지역의 분위기가 났다.
같이 신입사원 신청서를 냈던 신입 사원 두 명은 거의 다른 나라에서 십 여년을 용병회사생활을 해왔던 자들이라 그들의 몸에서 드러나는 많은 상처들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용병생활을 그만두고 이런 의뢰회사에 들어온 것은 아마도 이 회사의 진짜 업무를 알고 찾아온 것이리라.
“다들 모인 것 같으니 출발하죠. 서둘러서가야 할겁니다. 기차를 타고 간다고 해도 요즘 다시 마수들이 출현하는 횟수가 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 밤에는 국경 근처에선 움직일 수 없을듯합니다.”
“마수들이 다시 출현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자기보다 신참인 허크가 반말을 해도 그녀는 웃어 넘어가주면서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은 모두 아시다시피 ‘barrier’ 안쪽 입니다. 원래부터 마수들이 가끔씩 출현하기도 해서 위험지대죠. 문이 열려있으니 마수들이 길을 잃고 가끔씩 나오거든요. 그러나 최근에는 그 출현빈도가 잦아졌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주 하급마수들이라 저희에겐 그다지 위협은 안되지만 만약이라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인간들은 마수가 문을 통해 나와 다른 지역으로 퍼지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전쟁이 끝난 뒤 문을 둘러싸는 벽을 만들었다. 그 벽에 둘러싸인 지역을 barrier라고 이름 붙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barrier지역과 다른 지역의 이동은 나름 자유로웠고 국가에서는 ‘문’이라는 것을 관광 상품으로 팔기까지 했다. 매년 문을 보러 다른 나라에서 오는 관광객만 해도 수십 만 명이었다. 물론 언제 마수가 뛰어나올지 모르는 위험한 지역이긴 했지만 이 세상엔 스릴과 모험심에 겁을 팔아먹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barrier밖 지역들은 관광도시가 되어 발전한지 오래였다.
“왜 무서운가 봐요? 마수가 나타나서 허크 목을 콱 하고 물어버릴까 하고 걱정 하는건 아니겠죠.”
옆에서 자신의 짐을 다 챙겼는지 확인하던 헤기가 허크를 쳐다보며 말했다. 헤기는 자신과 같은 신입사원인데, 면접을 받을 때는 나타나지도 않다가 합격발표가 났을 때 처음 얼굴을 보이고는 “낙하산으로 합격했어요. 잘 부탁해요.” 하고 웃던 녀석이었다. 한마디로 재수 없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 녀석이다. 누군 여기 회사에 합격하려고 얼마를 쏟아 부었는데...
“너나 조심해. 그 가느다란 팔뚝으론 총도 못 쏠 것 같으니까.”
“전 전투요원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요.”
“퍽이나.”
그럼 왜 이 회사에 들어 온 거야? 심부름센터에나 들어갈 것이지. 한 달 동안 심부름센터 같은 일들만 잔뜩 하면서도 재미있다고 하하 호호 거리던 헤기였다.
공식적으론 의뢰내용을 가리지 않지만 이 회사가 하는 일은 거의 대부분 전투능력이 필요한 일들이었다. 신입 사원들을 데리고 여행 가듯이 가는 이 의뢰도 사실 알고 보면 barrier 안쪽으로 들어가는, 위험도로 따지면 수도 한복판에서 테러를 벌이는 수준의 의뢰였다. 그리고 방금 전 이비가 내뱉은 말에서도 위화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아무리 하급마수라 하더라도 사람 열명 정도는 순식간에 죽일 수 있는 파괴력이 있는데 그걸 보고는 별 위협이 안된다니 저렇게 보이는 이비도 사실은 보통 사람들을 뛰어넘는 전투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식 사원 중에서도 몇 명밖에 없다는 간부일 리가 없다. 그 간부 2명이 따라 붙는 만큼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
“아직 밖은 날씨가 좀 춥네요.”
열다섯 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기차로 달려 도착한곳은 barrier와 가장 인접한곳에 위치한 국경 근처 도시 소르메 였다. 거의 반나절을 기차 속에서 달려와 온몸이 뻐근해 어서 호텔에 들어가 침대에 눕고 싶었다. 이비가 모두를 불러놓고 내일 새벽 barrier안으로 들어갈 것 이니 다들 푹 쉬어두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그다음에 한 말은 허크를 편히 쉴 수 없게 만들었다.
“방 하나당 두 명씩 들어가면 될 것 같아요. 여기 903호는 허크랑 헤기씨 두 분이 같이 쓰시면 되요. 여기 열쇠요.”
다른 사람과 같이 쓰면 안되냐는 질문에 이미 리시타씨와 카이씨께서는 방으로 들어갔으니 신참끼리 방 같이 쓰면 좋지 않냐면서 방으로 올라가버렸다.
근데 리시타랑 카이 저 둘은 뭔데 지들끼리 먼저 올라가?
“저 둘은 연인이거든요.”
“아, 그렇군..........뭐...뭐어어????!!!!!”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헤기가 둘의 사이를 설명해주었다. 내가 놀라워한다는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은 듯 녀석은 어깨를 으쓱 해보이더니 더 심각하고 놀라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카이아저씨는 리시타 형이랑 둘만 있을 때 형을 ‘허니’라고 불러요.”
“넌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거지.”
“낙하산이니까.”
저 둘의 사이를 알고 있을 정도의 친분이 있을 줄이야. 이 회사는 보안이 철저해서 드러난 정보가 적었다. 회사 내에서는 사장의 정체는 물론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점점 더 이 녀석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며칠 전 애들을 시켜서 조사를 해놓으라 말해놓긴 했다. 이런 회사에 낙하산으로 무작정 들어오는 녀석은 없다. 더욱이 이 회사의 정체를 아는 사람일수록.
호실은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고 욕실이 딸려있는 깔끔한 방이었다. 여행경비를 모두 회사 측에서 부담을 한다 해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관광도시답게 호텔 숙박비가 다른 도시보다 비싼 감이 없지 않아 있음에도 좋은 호텔을 잡아 준 것이었다.
“먼저 씻을래요?”
“어.”
안 그래도 먼저 씻을 생각이었던 허크는 헤기가 양보를 해주자마자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리자 헤기가 탁자위에 있던 라디오를 켜 볼륨을 높인 후 테라스로 걸어갔다.
샤워를 다 마친 허크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본 것은 테라스를 활짝 열어놓고 바깥풍경을 보고 있는 헤기였다. 아직 밤에는 공기가 찬 탓에 샤워가운만 걸친 허크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자 인기척을 느껴 뒤를 돌아본 헤기가 서둘러 테라스 창을 닫았다.
“미안해요.”
“됐어. 어서 씻고 자.”
헤기가 알았다며 욕실로 들어가자 옷을 갈아입은 허크는 호텔을 나와 인근 우편물 취급소로 가서 자신의 이름 앞으로 온 우편물을 찾았다. 갈색 갱지로 된 편지봉투는 얼핏 보면 평범하지만 봉투를 뜯으면 안쪽에 아주 작게 암호가 적혀있었다. 근처 건물 화장실로 들어가 편지를 다 읽은 후 종이에 불을 붙여 태워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렸다.
편지는 며칠 전 명령한 헤기에 대한 조사 내용이었다. 헤기는 중부지방의 케르 라는 작은 도시에 위치한 고아원 출신이었다. 나이는 올해 18살. 작년 부터 수도로 올라와 여러 가지 일을 시작했고 특정한 주거지 없이 일하는 곳에서 숙식했다. 몇 개월 전에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한 기록이 있는데 레스토랑의 단골이던 길드원인 리시타, 이비와 친해져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뭔가 걸리는 것이 없는 것이 더 수상했다. 보통 친해졌다고 위험한 일을 하는 회사에 일반인을 가입시키는가? 그들은 그런 멍청한 짓을 할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미 손을 써둔 상태라는 소리다. 자신이 직접 나서서 캐볼 수밖에.
호텔로 돌아가자 룸서비스를 시킨 모양인지 탁자위에 과자를 늘어놓고 먹고 있는 녀석이 보였다. 초콜릿을 좋아하는지 죄다 초코 칩 쿠키, 초코 머핀, 초코 마카롱 등등 쳐다만 봐도 입안이 달아 인상이 구겨졌다.
허크가 인상을 쓰고 과자들을 쳐다보는 것을 먹고 싶어서 쳐다본 것으로 오해했는지 헤기가 쿠키하나를 들어 허크에게 내밀었다.
“아니.”
허크가 눈에 힘을 주며 거절하자 “그럼 말구” 라며 헤기가 뻗었던 손을 자기 입으로 가져가 과자를 먹었다. 저렇게 밤에 과자를 먹어대는데 살이 안찌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디 갔다 온 거에요. 호텔 밖에 나갔다 온 것 같은데.”
“바람 좀 쐬러.”
“아까는 춥다고 싫어했잖아요.”
“아깐 샤워 한 직후라서 그랬던거고.”
헤기는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 허크가 마주보고 있는 의자에 앉은 후 헤기에게 말을 걸었다.
“케르 출신이던데.”
“아, 어떻게 알았어요?”
“우연히.”
헤기를 쳐다보는 허크의 눈은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 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케르 출신이라는 것을 안다는 소리를 했다는 것은 이미 너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협박하는 것임을 헤기가 알아챘다. 과자를 먹던 손을 멈추고 눈을 마주봐오더니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특이 사항이 없는 게 수상해서.”
“그게 수상할 일인가요?”
“무척 수상하지. 회사에 들어 올 이유가 없잖아.”
일반인들은 그저 의뢰를 들어주는 회사로 생각하지만 사실상 인간병기들의 집합소인 이곳은 보통 사람이라면 가입 불가하다. 그게 아무리 사장의 할아버지라고 할지라도 예외는 없다고 들었다. 헤기는 심기가 불편 하다는 듯이 눈썹 한쪽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렇게 의심하니 별 수 없지. 실례.”
헤기가 의자에서 일어나 재빠르게 탁자위에 놓여있던 잼 나이프를 들어 자신의 왼쪽손등에 박아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허크가 의자를 밀치며 일어나 소리쳤다.
“지금 무슨!!”
헤기는 허크가 소리치건 말건 자신의 왼손을 관통한 나이프를 단숨에 빼내었다. 당연히 나이프를 빼는 순간 헤기의 피가 탁자위에 흩뿌려졌다. 출혈이 심해 당장이라도 지혈을 해야 하는데 웬일인지 손을 관통한 당사자는 여유만만하게 웃고 있었다. 헤기가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왼손에 거의 닿을 정도의 높이만큼 가져가자 밝고 작은 하얀 구체들이 상처 주위에 생기기 시작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손을 관통한 상처들은 말끔히 치료가 되었다. 탁자 위 그리고 헤기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 뭍은 피가 아니었다면 헤기 자신의 손에 나이프를 박았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 정도였다.
“치유.... 마법...!”
100년전 마왕이 죽은 후 마력이 사라져 인간들은 마법을 쓸 수 없게 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마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마수들과는 달리 지상에 퍼져있는 마력을 모아서 쓰는 인간들은 지상에 퍼져있는 마력의 원천지가 마왕이라는 사실을 몰랐었다. 마왕이 내뿜는 마기에서 나오는 마력은 아주 적은 양이었지만 그 마력들을 모으고 정제해 마정석으로 만들어 인간들은 마법을 쓸 수 있었다. 마왕이 사라지자 지상에 있던 마력들은 사라졌고 남아있던 마정석들의 마력이 다하자 인간 세상에는 마법이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마수처럼 마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이 있다고 들었다. 그들은 마수처럼 마정석 없이도 마법을 쓸 수 있었지만 가지고 있는 마력의 양이 턱없이 부족해 그들이 쓸 수 마법은 아주 간단한 기초 마법들뿐이었다. 그것조차 1~2년이 지나면 마력을 소진해 쓸 수 없다고 한다. 국가에서는 이런 자들을 잡아다가 연구소에 가둬놓고 어떻게 하면 그들의 몸속에 있는 마력을 채취 할 수 있는지 밤낮으로 실험한다고 한다.
지금 헤기가 시전 한 치유마법은 100년 전에도 시전 할 수 있는 자가 극히 드물었다는 최상위 마법이었다. 시전 시 마력소모가 심해 어지간하면 쓰지 않았던 데다가 시전자의 체력까지 깍아 먹는다고 들었다. 하지만 허크의 눈에 보이는 헤기는 힘든 기색도 없이 반듯하게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자가 존재 한다는 걸 국가에서 알게 된다면 군대를 끌고 와서라도 납치해 평생 죽을 때까지 실험체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실험실생쥐처럼 살기 싫으면,
“너 그 능력 밖에서 절대 쓰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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