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마수들은 100년 전만해도 서로 마주 할 일이 없었으며 각자세계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두 세계를 이어주는 문이 열려 문을 통해 나가 우연히 인간을 헤친 마수 한 마리만 아니었다면 수많은 사람과 마수가 죽은 전쟁이 일어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 전쟁에서 왕국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며 그 영웅이 마왕을 죽이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마왕이 죽자 세상에는 마력이 사라지게 되었다. 인간들은 마력을 쓰지 못해 마법사를 보기 힘들게 되었으며 마법이 사라진 대신 기술과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마왕을 잃은 마수들은 혼란스러움을 이끌고 자신들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다. 그 이후에도 여전히 문은 열려있지만 인간도 마수도 서로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는다는 불가침조약이 생긴지 100년째였다.

 

 

 

1.

 

최종합격 테스트요?”

 

내 옆에 앉아있던 헤기는 평소처럼 멍청한 얼굴로 물었다. 나도 겉으로 표는 안냈지만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이미 한달 전 정식사원으로 인정 받은게 아니었나. 헤기 말고도 이 주 전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들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으로 관리자를 바라봤다.

 

우리 회사는 어느 정도 회사에 적응할 수 있을 만한 시간을 둔 뒤 최종테스트를 치룬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임시 사원 이었다는 소리였다. 회사 이름이 길드라고 할 때부터 알아봐야했나. 사원들을 길드원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부터가 이상했긴 했지만. 어쩐지 회사명성에 맞지 않게 길 안내라거나 잃어버린 물건 찾아주기, 도망간 애완동물 잡아오기 등등 자질구레한 의뢰만 맡기더라니! 왕실군도 이정도로 까다롭게 뽑지는 않겠다. 말로는 테스트라고는 하지만 실상 사원이 되고 겪는 첫 정식 의뢰임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 테스트란게 뭐지?”

 

 

 

 

“..........허크!”

 

잠시 생각에 잠겨 앉아 있던 내 앞으로 헤기 녀석이 얼굴을 들이밀며 내 이름을 연신 부르고 있었다. 뭐하고 있던 거냐며 로비에 일행들이 모여 있으니 빨리 가야한다고 나를 재촉했다. 정식 길드 원이 되려면 테스트를 치러야 한다고 며칠 전 들었다. 이번 신입 길드 원들에게 주어진 그 테스트라는 것은 국경근처에 위치한 광산에서만 생산되는 희귀광물을 구해오는 것이었다. 광산이 위치한 곳은 위험하기로 소문난 지역이면서도 광물 자체가 보안이 철저한 가운데 있기 때문에 가더라도 구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서둘러야 한다는 녀석을 앞세워 로비로 내려가니 빈말은 아니었는지 모두들 짐을 챙기고 대기 중이었다.

 

어디 있다가 이제오세요.”

 

선임 중 한명인 이비가 특유의 나긋한 목소리로 덕분에 늦는다고 꾸짖으며 어서오라고 손짓했다. 그녀의 조금 진한 갈색 눈이 살짝 웃음 지어보였다. 갑자기 와서 대뜸 광산에 가야한다 말했던 그녀와는 대조적인 무뚝뚝한 선임 길원 카이는 다부진 체격에 말수가 적고 눈매가 날카로웠는데 그에게선 특유의 동쪽지역의 분위기가 났다.

같이 신입사원 신청서를 냈던 신입 사원 두 명은 거의 다른 나라에서 십 여년을 용병회사생활을 해왔던 자들이라 그들의 몸에서 드러나는 많은 상처들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용병생활을 그만두고 이런 의뢰회사에 들어온 것은 아마도 이 회사의 진짜 업무를 알고 찾아온 것이리라.

 

다들 모인 것 같으니 출발하죠. 서둘러서가야 할겁니다. 기차를 타고 간다고 해도 요즘 다시 마수들이 출현하는 횟수가 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 밤에는 국경 근처에선 움직일 수 없을듯합니다.”

 

마수들이 다시 출현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자기보다 신참인 허크가 반말을 해도 그녀는 웃어 넘어가주면서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은 모두 아시다시피 ‘barrier’ 안쪽 입니다. 원래부터 마수들이 가끔씩 출현하기도 해서 위험지대죠. 문이 열려있으니 마수들이 길을 잃고 가끔씩 나오거든요. 그러나 최근에는 그 출현빈도가 잦아졌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주 하급마수들이라 저희에겐 그다지 위협은 안되지만 만약이라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인간들은 마수가 문을 통해 나와 다른 지역으로 퍼지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전쟁이 끝난 뒤 문을 둘러싸는 벽을 만들었다. 그 벽에 둘러싸인 지역을 barrier라고 이름 붙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barrier지역과 다른 지역의 이동은 나름 자유로웠고 국가에서는 이라는 것을 관광 상품으로 팔기까지 했다. 매년 문을 보러 다른 나라에서 오는 관광객만 해도 수십 만 명이었다. 물론 언제 마수가 뛰어나올지 모르는 위험한 지역이긴 했지만 이 세상엔 스릴과 모험심에 겁을 팔아먹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barrier밖 지역들은 관광도시가 되어 발전한지 오래였다.

 

왜 무서운가 봐요? 마수가 나타나서 허크 목을 콱 하고 물어버릴까 하고 걱정 하는건 아니겠죠.”

 

옆에서 자신의 짐을 다 챙겼는지 확인하던 헤기가 허크를 쳐다보며 말했다. 헤기는 자신과 같은 신입사원인데, 면접을 받을 때는 나타나지도 않다가 합격발표가 났을 때 처음 얼굴을 보이고는 낙하산으로 합격했어요. 잘 부탁해요.” 하고 웃던 녀석이었다. 한마디로 재수 없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 녀석이다. 누군 여기 회사에 합격하려고 얼마를 쏟아 부었는데...

 

너나 조심해. 그 가느다란 팔뚝으론 총도 못 쏠 것 같으니까.”

전 전투요원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요.”

퍽이나.”

 

그럼 왜 이 회사에 들어 온 거야? 심부름센터에나 들어갈 것이지. 한 달 동안 심부름센터 같은 일들만 잔뜩 하면서도 재미있다고 하하 호호 거리던 헤기였다.

공식적으론 의뢰내용을 가리지 않지만 이 회사가 하는 일은 거의 대부분 전투능력이 필요한 일들이었다. 신입 사원들을 데리고 여행 가듯이 가는 이 의뢰도 사실 알고 보면 barrier 안쪽으로 들어가는, 위험도로 따지면 수도 한복판에서 테러를 벌이는 수준의 의뢰였다. 그리고 방금 전 이비가 내뱉은 말에서도 위화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아무리 하급마수라 하더라도 사람 열명 정도는 순식간에 죽일 수 있는 파괴력이 있는데 그걸 보고는 별 위협이 안된다니 저렇게 보이는 이비도 사실은 보통 사람들을 뛰어넘는 전투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식 사원 중에서도 몇 명밖에 없다는 간부일 리가 없다. 그 간부 2명이 따라 붙는 만큼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아직 밖은 날씨가 좀 춥네요.”

 

열다섯 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기차로 달려 도착한곳은 barrier와 가장 인접한곳에 위치한 국경 근처 도시 소르메 였다. 거의 반나절을 기차 속에서 달려와 온몸이 뻐근해 어서 호텔에 들어가 침대에 눕고 싶었다. 이비가 모두를 불러놓고 내일 새벽 barrier안으로 들어갈 것 이니 다들 푹 쉬어두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그다음에 한 말은 허크를 편히 쉴 수 없게 만들었다.

 

방 하나당 두 명씩 들어가면 될 것 같아요. 여기 903호는 허크랑 헤기씨 두 분이 같이 쓰시면 되요. 여기 열쇠요.”

 

다른 사람과 같이 쓰면 안되냐는 질문에 이미 리시타씨와 카이씨께서는 방으로 들어갔으니 신참끼리 방 같이 쓰면 좋지 않냐면서 방으로 올라가버렸다.

근데 리시타랑 카이 저 둘은 뭔데 지들끼리 먼저 올라가?

 

저 둘은 연인이거든요.”

, 그렇군.............뭐어어????!!!!!”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헤기가 둘의 사이를 설명해주었다. 내가 놀라워한다는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은 듯 녀석은 어깨를 으쓱 해보이더니 더 심각하고 놀라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카이아저씨는 리시타 형이랑 둘만 있을 때 형을 허니라고 불러요.”

넌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거지.”

낙하산이니까.”

 

저 둘의 사이를 알고 있을 정도의 친분이 있을 줄이야. 이 회사는 보안이 철저해서 드러난 정보가 적었다. 회사 내에서는 사장의 정체는 물론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점점 더 이 녀석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며칠 전 애들을 시켜서 조사를 해놓으라 말해놓긴 했다. 이런 회사에 낙하산으로 무작정 들어오는 녀석은 없다. 더욱이 이 회사의 정체를 아는 사람일수록.

 

호실은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고 욕실이 딸려있는 깔끔한 방이었다. 여행경비를 모두 회사 측에서 부담을 한다 해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관광도시답게 호텔 숙박비가 다른 도시보다 비싼 감이 없지 않아 있음에도 좋은 호텔을 잡아 준 것이었다.

 

먼저 씻을래요?”

 

.”

 

안 그래도 먼저 씻을 생각이었던 허크는 헤기가 양보를 해주자마자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리자 헤기가 탁자위에 있던 라디오를 켜 볼륨을 높인 후 테라스로 걸어갔다.

 

샤워를 다 마친 허크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본 것은 테라스를 활짝 열어놓고 바깥풍경을 보고 있는 헤기였다. 아직 밤에는 공기가 찬 탓에 샤워가운만 걸친 허크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자 인기척을 느껴 뒤를 돌아본 헤기가 서둘러 테라스 창을 닫았다.

 

미안해요.

 

됐어. 어서 씻고 자.”

 

헤기가 알았다며 욕실로 들어가자 옷을 갈아입은 허크는 호텔을 나와 인근 우편물 취급소로 가서 자신의 이름 앞으로 온 우편물을 찾았다. 갈색 갱지로 된 편지봉투는 얼핏 보면 평범하지만 봉투를 뜯으면 안쪽에 아주 작게 암호가 적혀있었다. 근처 건물 화장실로 들어가 편지를 다 읽은 후 종이에 불을 붙여 태워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렸다.

 

편지는 며칠 전 명령한 헤기에 대한 조사 내용이었다. 헤기는 중부지방의 케르 라는 작은 도시에 위치한 고아원 출신이었다. 나이는 올해 18.  작년 부터 수도로 올라와 여러 가지 일을 시작했고 특정한 주거지 없이 일하는 곳에서 숙식했다. 몇 개월 전에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한 기록이 있는데 레스토랑의 단골이던 길드원인 리시타, 이비와 친해져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뭔가 걸리는 것이 없는 것이 더 수상했다. 보통 친해졌다고 위험한 일을 하는 회사에 일반인을 가입시키는가? 그들은 그런 멍청한 짓을 할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미 손을 써둔 상태라는 소리다. 자신이 직접 나서서 캐볼 수밖에.

 

호텔로 돌아가자 룸서비스를 시킨 모양인지 탁자위에 과자를 늘어놓고 먹고 있는 녀석이 보였다. 초콜릿을 좋아하는지 죄다 초코 칩 쿠키, 초코 머핀, 초코 마카롱 등등 쳐다만 봐도 입안이 달아 인상이 구겨졌다.

허크가 인상을 쓰고 과자들을 쳐다보는 것을 먹고 싶어서 쳐다본 것으로 오해했는지 헤기가 쿠키하나를 들어 허크에게 내밀었다.

 

아니.”

 

허크가 눈에 힘을 주며 거절하자 그럼 말구라며 헤기가 뻗었던 손을 자기 입으로 가져가 과자를 먹었다. 저렇게 밤에 과자를 먹어대는데 살이 안찌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디 갔다 온 거에요. 호텔 밖에 나갔다 온 것 같은데.”

 

바람 좀 쐬러.”

 

아까는 춥다고 싫어했잖아요.”

 

아깐 샤워 한 직후라서 그랬던거고.”

 

헤기는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 허크가 마주보고 있는 의자에 앉은 후 헤기에게 말을 걸었다.

 

케르 출신이던데.”

 

, 어떻게 알았어요?”

 

우연히.”

 

헤기를 쳐다보는 허크의 눈은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 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케르 출신이라는 것을 안다는 소리를 했다는 것은 이미 너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협박하는 것임을 헤기가 알아챘다. 과자를 먹던 손을 멈추고 눈을 마주봐오더니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특이 사항이 없는 게 수상해서.”

 

그게 수상할 일인가요?”

 

무척 수상하지. 회사에 들어 올 이유가 없잖아.”

 

일반인들은 그저 의뢰를 들어주는 회사로 생각하지만 사실상 인간병기들의 집합소인 이곳은 보통 사람이라면 가입 불가하다. 그게 아무리 사장의 할아버지라고 할지라도 예외는 없다고 들었다. 헤기는 심기가 불편 하다는 듯이 눈썹 한쪽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렇게 의심하니 별 수 없지. 실례.”

 

헤기가 의자에서 일어나 재빠르게 탁자위에 놓여있던 잼 나이프를 들어 자신의 왼쪽손등에 박아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허크가 의자를 밀치며 일어나 소리쳤다.

 

지금 무슨!!”

 

헤기는 허크가 소리치건 말건 자신의 왼손을 관통한 나이프를 단숨에 빼내었다. 당연히 나이프를 빼는 순간 헤기의 피가 탁자위에 흩뿌려졌다. 출혈이 심해 당장이라도 지혈을 해야 하는데 웬일인지 손을 관통한 당사자는 여유만만하게 웃고 있었다. 헤기가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왼손에 거의 닿을 정도의 높이만큼 가져가자 밝고 작은 하얀 구체들이 상처 주위에 생기기 시작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손을 관통한 상처들은 말끔히 치료가 되었다. 탁자 위 그리고 헤기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 뭍은 피가 아니었다면 헤기 자신의 손에 나이프를 박았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 정도였다.

 

치유.... 마법...!”

 

100년전 마왕이 죽은 후 마력이 사라져 인간들은 마법을 쓸 수 없게 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마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마수들과는 달리 지상에 퍼져있는 마력을 모아서 쓰는 인간들은 지상에 퍼져있는 마력의 원천지가 마왕이라는 사실을 몰랐었다. 마왕이 내뿜는 마기에서 나오는 마력은 아주 적은 양이었지만 그 마력들을 모으고 정제해 마정석으로 만들어 인간들은 마법을 쓸 수 있었다. 마왕이 사라지자 지상에 있던 마력들은 사라졌고 남아있던 마정석들의 마력이 다하자 인간 세상에는 마법이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마수처럼 마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이 있다고 들었다. 그들은 마수처럼 마정석 없이도 마법을 쓸 수 있었지만 가지고 있는 마력의 양이 턱없이 부족해 그들이 쓸 수 마법은 아주 간단한 기초 마법들뿐이었다. 그것조차 1~2년이 지나면 마력을 소진해 쓸 수 없다고 한다. 국가에서는 이런 자들을 잡아다가 연구소에 가둬놓고 어떻게 하면 그들의 몸속에 있는 마력을 채취 할 수 있는지 밤낮으로 실험한다고 한다.

 

지금 헤기가 시전 한 치유마법은 100년 전에도 시전 할 수 있는 자가 극히 드물었다는 최상위 마법이었다. 시전 시 마력소모가 심해 어지간하면 쓰지 않았던 데다가 시전자의 체력까지 깍아 먹는다고 들었다. 하지만 허크의 눈에 보이는 헤기는 힘든 기색도 없이 반듯하게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자가 존재 한다는 걸 국가에서 알게 된다면 군대를 끌고 와서라도 납치해 평생 죽을 때까지 실험체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실험실생쥐처럼 살기 싫으면,

 

너 그 능력 밖에서 절대 쓰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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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님 헤기가 임무를 열심히 돌아서 생각난 썰

 

 

 

 

 

헤기. 16. 낮에는 가게를 전전하며 일을 하고 밤에는 일을 주는 중계상인들에게 임무를 받아서 돈을 번다. 부모님은 없고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형이랑 같이 살고 있었는데, 그 형이라는 사람이 도박에 미친놈이라 그만 헤기 앞으로

 

 

오늘 임무는 뭐야?”

 

 

빚을 2억이나 떠안기고 죽었다.

 

 

 

 

이번일은 꽤 짭잘 한거야.”

 

뭔데?”

 

뭐 의뢰인이 직접 보고 사람을 뽑는다고 해서, 미리 말해줄 순 없고. 궁금하면 4번가 뒷골목 주점으로 가봐.”

 

 

평소에도 잔금을 많이 떼먹는 편이지만 일하나는 잘 주는 터라 즐겨 찾던 중계 놈이 오늘은 큰 건이 잡혔다며 헤기를 꼬드겼다. 형이 소싯적 알려줬던 단검 술로 그럭저럭 자기 몸 하나 지킬만한 능력이 있던 헤기는 임무라고 불리는 일을 해왔다. 임무라고해도 별 시덥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집 나간 고양이 찾기, 밭 파헤치는 멧돼지 잡기. 같은 간단한 것이다. 그런 것들은 해봐야 몇 푼 벌지도 못하지만 오늘처럼 뒷골목에서 의뢰하는 임무는 벌이가 좋다. 물론 그런 임무들은 위험하고 불법적인 것들이 끼어있어서 헤기는 그런 임무는 좀처럼 하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라면 거절했을 그 임무가 그냥 누구대신 서있으면 된다고 절대로 위험한거 아니라고 하는 통에 궁금하기도 하고 마침 살던 집주인이 밀린 월세와 저번에 고리대금업자들이 난리치고 가 부셔진 벽수리비를 내놓으라 재촉하는 바람에 헤기는 발걸음을 옮겼다.

무슨 임무인지 확인만 하고 위험할 것 같으면 발 빼자는 생각이었다.

 

 

 

주점은 생각보다 고급 졌고 사람들이 많았다. 헤기는 카운터로 가서 중계가 준 코인을 건네며 허크를 만나러 왔다고 전했다. 바텐더는 코인을 받더니 헤기를 위아래로 살피고 곧 안으로 들어갔다가 몇 분 후 들어오라는 말을 전했다. 길게 이어진 통로를 한참 걸어갔을까 드디어 헤기는 허크 라는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네가 헤기?”

 

 

그곳에는 거대한 재규어를 닮은 남자가 여자들을 끼고 포커를 치고 있었다. 천막이 쳐진 홀은 담배연기로 자욱하게 변해 있어 헤기가 눈을 찡그렸다.

중계상인이 언제 헤기이름을 알려 준건지 남자는 헤기를 보자마자 이름을 부르며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런 모습이 부담스러워 얼굴을 돌리며 헤기가 물었다.

 

 

무슨 임무인지 듣고 싶어서 왔어요.”

 

아아, 별거 아냐. 내가 바빠서 사흘 후에 나 대신 아는 사람한테 선물 좀 건네주면 돼.”

 

그게 다..... 에요?”

 

그래.”

 

 

거짓말. 헤기는 입술을 잘근 씹었다. 지인에게 선물을 준다면서 중계상인을 통해 의뢰를 한다? 미심쩍다는 듯 헤기가 쳐다보자 허크가 예의 미소를 날리며 말했다.

 

 

정말이야, 꼬맹아. 네가 생각하는 그런 위험한 일이었다면 너 같은 풋내기 시키지도 않아.”

 

 

그건 맞는 말이었다. 헤기는 이쪽사람은 아니 였으니까. 헤기가 머뭇거리자 허크는 한숨을 쉬더니, 말했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생각해 보겠다며 헤기는 집으로 돌아갔다.

 

 

뭐 네가 싫다면 강욘 안 해. 난 네가 맘에 들었지만.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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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묵비권이 있으며, 법정에서 유리한 진술을 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손목이 뒤로 꺾여져 수갑이 채워지는 소리가 났다. 헤기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았지만 경찰차 본네트 위에 쳐박혀지는 머리가 울려 그마저도 포기했다.

 

마약밀매

 

헤기가 붙잡힌 죄목이다. 그에 더해 헤기는 가방을 건네줄 때 자신을 허크 라고 소개했다. 허크는 뒷골목에서 유명한 조직의 보스로 경찰들이 예의 주시하며 노리는 거물급 인사였다. 용의주도하고 얼굴을 잘 비치지 않으며 이름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인. 그런 허크 라고 자신을 소개한 헤기에게 허크가 저지른 수많은 악질 죄목들이 뒤집어 씌워지기 시작했다.

 

살인’ ‘무기밀수’ .......

 

 

경찰들은 헤기가 허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허크를 잡았다고 언론에 밝혔다. 진짜 허크가 나타나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하지만 수일이 지나도 잠잠했고 감옥에 갇힌 헤기는 경찰들과 검사들에게 치여 조그마한 몸을 떨며 울었다. 아니야. 내가 한게 아니야. 난 잘못한게 없어. 왜 내말은 안 믿어줘요?

 

며칠 후 예정대로 허크, 아니 헤기의 재판이 진행 되었다.

 

 

피고인은 모월모일모시 항구에서 마약을 거래한 사실을 인정합니까?”

 

“.......저는 몰...라요...”

 

그럼 이 하얀 가루는 마약이 아니라 설탕이라는 소리십니까? 이미 성분 분석이 끝난 상태의 가루를 증거물로 제시합니다.”

 

 

검사는 신이 나서 헤기에게 죄목을 읊었다. 대부분 헤기가 듣도보도 못한 허크가 저지른 범죄라 가만히 있었지만 항구에서 있었던 일 만큼은 헤기도 억울했다. 하지만 돈이 없어 입이 돌아갈 금액의 비싼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었던 헤기는 텅 빈 변호사 석을 쳐다보고 고개를 숙였다.

 

일방적인 심문이 끝나고 판사가 손을 들었다.

 

 

피고인은 오래전부터 악질의 범죄를 일삼으며 폭력집단의 우두머리로써 행동을 해왔고 그 죄목이 심히 많아........”

 

 

검사와 판사, 그리고 헤기. 몇 명의 경찰만이 존재하는 재판소의 공기가 조용했다.

 

 

사형에 처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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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닥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두 손이 앞으로 포박된 헤기가 옆으로 누워 있다가 천장을 바라보며 몸을 돌렸다. 지금 자신의 꼴이 너무 우습고 한심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애초에 그런 놈들이 주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헤기는 한번 버리고 말 장기였고 버리는 패였다. 그걸 알면서도 ........

 

헤기는 이빨을 갈며 분노했다. 이런대서 그놈대신 죽어줄 수 없었다. 찾아가서 멱살이라도 잡아야했다. 헤기는 세면대로 다가가 개수대를 살폈다. 노즐 밸브를 갈아서 얇게 검으로 만들면 눈치 채지 못하게 품에 숨겨둘 만한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내일 밤 옆 수용소 사형장으로 헤기가 운송되는 그 시점이 탈출의 마지막 기회다. 헤기는 탈옥....아니, 자신의 필사의 외침을 들어 주지 않는 지옥 따위 박차고 나가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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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크는 며칠 새 주위에 알짱거리는 강아지새끼한마리가 있다는 걸 느꼈다. 밑에 놈들이 알아서 처리해 강가에 버려두었다 길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그 강아지 새끼가 건물을 나오는 자신의 멱살을 다짜고짜 붙잡자 흥미가 생겼다.

 

당신 때문에!!! 내가!!”

 

 

허크의 절반 정도 오는 작은 크기의 헤기가 달려드는 조직원들을 단검으로 쳐내며 끝까지 허크의 멱살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푸른 불빛에 작은 단검이라니 수년전 도박장에서 행패 부리던 남자가 쓰던 것과 유사해 보였다. 그때에도 특이해 유심히 봤던 터라 허크는 관심을 가졌다.

쓸 만 할 것 같다. 허크가 헤기에게 느끼는 두 번째 감정이었다. 허크는 단검을 휘두르는 헤기의 손짓을 피하며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허크의 손 하나에 헤기의 얼굴이 다 감싸 쥘만큼 거대한 주먹이 헤기의 복부를 때렸고 헤기는 그 자리에서 외마디 신음과 함께 기절했다.

 

독방에 넣어놔.”

 

허크가 옆에 있던 조직원에게 명령했다.

 

 

이틀 째, 아니 길거리에서 경찰들을 따돌리며 뒷골목에 숨어 있던 시간까지 합하면 사 일째. 가끔 죽지 말라고 물과 음식을 주고 가긴 하는데 그것도 헤기가 난리를 치는 통에 거의 땅에 쏟아 부어 버리는게 대부분. 그렇게 몇 번의 실랑이가 지나가고 마침내 허크가 독방에 찾아왔다.

 

 

눈 떠.”

 

 

허크의 낮은 울림이 방안을 울렸다. 헤기는 기운이 없어 눈으로만 허크를 노려보았다.

 

 

내가 잘못 한 거라고 생각하나?”

 

헤기가 눈을 감았다 떴다. 맞다고 대꾸하듯.

 

 

난 내 대역이 필요했고. 넌 돈이 필요했고, 우리 둘 사이에는 이해관계가 충족된 상황이었지. 근데 넌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돈이 없는게 잘못일까? 가난한게 죄일까? 아니야. 그건 죄가 아니지. 그 자체로는 말이야. 근데 넌 선택을 했고 내가 제시한 대가를 돈으로 산거지. 근데 그게 잘못 된거라면. 내가 잘못했을까, 네가 잘못했을까?”

 

 

머리가 아프다. 솔직히 배도 너무 고프고 손에 힘이 안 쥐어 진다. 이렇게 단둘이 있을 때 얼른 저놈의 목을 따버려야 하는데. 하고 헤기가 생각했다.

 

 

그럼 돈을 가지게 된 넌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자신이 있나?

 

 

 

헤기는 허크의 말을 끝으로 눈을 스르륵 감았다.

 

헤기는 폭신한 침대에 한 쪽 팔에 링겔을 꽂고 있는 채로 눈을 떴다. 곧 문이 열리고 고소한 스프냄새를 풍기며 허크가 다가왔다. 그는 헤기의 얼굴 앞에 그릇을 내밀며 처먹으라고 했다. 헤기는 싫다고 저항했으나 뱃속에서 울려오는 꼬르륵 거리는 소리에 그릇을 받아 쥐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스푼을 힘껏 잡고 퍽퍽 퍼먹었다. 스푼이 스프를 한 숟가락 뜰 때마다 그릇 안으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난 당신 죽일꺼에요.”

 

그래. 해봐.”

 

난 잘못한거 없어요....”

 

그건 내 밑에서 천천히 생각해봐.”

 

 

내가 왜 당신 밑으로 들어 가냐고 헤기는 생각했고. 스프가 너무 맛있어 눈물이 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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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뒤 헤기는 허크의 옆에서 같이 일하는 사이가 되었다. 허크의 조직에 들어가게 된 초반에는 틈만 나면 허크의 등을 노렸지만 그때마다 헤기의 손목을 꺾으며 허크는 여유를 부렸다. 바득바득 갈며 검술을 연마하고 주위에 물들어 험한 일을 시작하고. 헤기는 그렇게 스스로 바뀌어갔다. 이제는 허크를 죽이겠다는 다짐은 변색되고 약속인지 질문인지 모를 의문만 남아있었지만 그마저도 바쁜 일상에 잊어버리고 있었다.

조직에 있으면서 헤기는 월급도 받고 일하며 착실하게 빚을 갚아나갔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금액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3년 새 빚을 절반이나 갚았지만 아직도 1. 차용증을 쌓아두고 한숨을 쉬는 헤기를 보며 허크가 언제나 질 나쁜 장난을 쳤다.

 

 

그 예쁜 얼굴 뒀다 뭐에 써? 내가 한번 여자를 안으면서 얼마 쓰는 줄 알면 너도 생각이 달라질텐데?”

 

서류나 치우시죠,”

 

천 만원이야. 그럼 열 번만하면...뭐 니가 내 정부가 되면 엉덩이봐서 빚 갚아 줄 수도 있고.....

 

 

헤기가 허크의 어깨를 환영 검으로 살짝 스쳤다. 삼년 간 허크 밑에서 헤기는 배울 것 못 배울 것 가리지 않고 배웠다. 헤기가 조금 여리고 얼굴이 반반하다는 이유로 쏟아지는 질 나쁜 성희롱을 견뎌내며 헤기는 누구보다 지랄 맞게 자랐다.

헤기는 별 일없으면 왜 불렀다고 화를 냈다. 허크는 그제서야 정장 한 벌을 헤기에게 던져주며 오늘밤열릴 파티에 같이 가야한다고 했다.

 

중앙의 퇴역군인 출신 귀족의 손녀딸 생일파티였다. 헤기는 차를 타고 가면서 허크에게 대충 설명을 들었다. 그냥 얌전히 있어. 어짜피 필요한 걸 얻기만 하면 끝이니까.

저택에서 열리는 파티는 화려하고 불편했다. 이런 곳은 처음인 헤기가 긴장한 티를 내지 않도록 옷깃을 다듬었다. 허크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모 귀족집안의 도련님처럼 꾸몄다. 비서라고 소개된 헤기는 어느새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오늘의 주인공인 손녀와 군인에게 다가간 허크를 지켜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사람들에게 치어 밀려났다. 헤기가 한창 구석에서 와인을 들이키다 어느새 손녀와 화기애애하고 웃으며 대화를 하는 허크를 바라보았다.

저렇게 신사적이고 부드럽고 예의바른 허크라니. 피식 하고 웃음이 났다. 헤기에겐 언제나 엉덩이를 주무르며 야한 농담을 하는 허크가, 뒷골목 놈들에게 욕을 하며 발길질을 일삼는 허크가, 칼을 들고 피에 젖어있는 허크가 익숙하고. 또 그게 그의 본 모습이라는 것을 알았다.

괜히 이곳에서 허크의 본래 모습을 알고 있는게 자신뿐이라는 우쭐해지는 마음에 헤기가 술을 더 입으로 가져다 댔다.

귀족아가씨, 허크가 저렇게 가식적으로 웃어줘도 속지마세요. 완전 개새끼니까요.

 

헤기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귀족 아가씨는 허크에게 푹 빠진 것처럼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퇴역군인인 그녀의 할아버지조차 듬직하고 잘생긴 허크를 마음에 들어 했다. 헤기는 괜한 마음에 짜증이 났다. 허크가 데이트를 할 때 운전기사로 헤기를 데리고 갔기 때문이다. 저 새끼는 왜 날 데리고 간담. 배알 꼴리게 시리. 젤라또를 각자 손에 쥐고 활짝 웃는 허크와 아가씨의 모습에 헤기는 자기 손에 들린 젤라또가 처량해보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의 할아버지는 허크를 자신의 개인소유 무기 공장에 불러들였다. 허크를 사위 삼고 싶다는 말에 허크는 당연한 말씀이지 않습니까 장인어르신.’이라고 가식을 떨었다.

 


그리고 그 날 밤. 무기 공장이 허크의 조직에 의해 털렸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새벽, 허크의 조직과 예전부터 마찰이 심했던 조직에게 허크는 공격을 가했다. 헤기는 내 등이나 잘 지켜.’ 라고 말하는 허크의 말을 듣고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잔챙이들을 처리했다. 숫자는 거의 비등비등했으나 허크가 들고 온 많은 양의 무기에 상대는 괴멸했다보스를 처리하고 몇 남은 놈들도 도망을 가 다시는 안 올 기세였고 본거지 지하에 있던 노예들과 성매매에 끌려온 여자들이 풀려났으며, 그리고 수많은 히로인, 코카인..... 하얀 백색가루들이 불태워졌다. 판다면 평생을 놀고 먹어도 될 량의 마약을 불태워 버릴거면서 왜 조직을 친 건지 헤기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거 한 포면 빚 반절은 갚을 텐데.

 

 

그렇게 불타오르는 건물을 뒤로한 채 허크는 헤기를 데리고 도망을 쳤다. 물론 다른 조직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무기고를 털렸다는 사실을 알아챈 귀족 나으리가 사병을 이끌고 허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잠잠 해질 때까지 해외로 피신해 있을 거다.”

 

 

헤기는 허크가 이끄는 대로 끌려 태어나서 난생처음 먼 이국땅을 밟았다. 그곳은 헤기의 나라와 조금은 다른 모습이어서 처음에는 고개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허크는 추격자가 붙었다며 어느 날은 호텔에 틀여 박혀 입욕제 푼 욕실에서 나오지 않았고(돈 없다고 한방에서 자게 했다) 한곳에 오래 있으면 또 안 된다며 사람 많은 야시장이라는 곳에 데려가서 만두와 요리를 먹었다. 가끔 추격자라며 허크가 골목으로 숨어 헤기를 품안에 가득 넣고 큰 손으로 입을 틀어막을 때는 내심 불안하면서도 얼마안가 밖으로 나와 거릴 거닐면 처음 보는 신기한 것들에 눈길을 사로잡혔다.

그래도 한 달 동안이나 허크가 흩어진 조직원들과 연락 할 방법도, 추격자들을 따돌릴 방법도 생각하지 않은 채 피둥피둥 노는 모습에 헤기가 의문을 가졌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고.

 

 

어느 날 허크가 헤기를 데리고 큰 대로변에 위치한 기관 건물로 들어갔다. 헤기는 질색하며 위조된 여권으로 밀입국한 주제에 어딜 가냐고 허크를 붙잡았다. 허크는 괜찮다고 헤기를 잘 타이르고 곧 창구에서 서류봉투를 들고 왔다. 헤기가 그 서류에 의문을 가지자 허크가 나중에 알려준다며 품 안으로 숨겼다.

 

그 이후 허크가 헤기를 영화촬영 테마파크에 데려갔다. 뜽금 없는 장소에 헤기가 불만을 표했지만 허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헤기를 재판소 세트장에 끌고 갔다.

 

 

재판소.

 

 

헤기가 숨을 들이마셨다. 긴장한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지만 허크가 헤기의 옆구리에 손을 넣고 들고 가는 바람에 의자에 앉혀졌다. 졸지에 피고인자리에 앉게 된 헤기가 허크를 쳐다보았고 허크는 검사 측 자리로 가 걸려있던 검사 복을 입고 이내 말을 하기 시작했다.

 

피고인은 모월모일모시 항구에서 마약을 거래했습니까?”

 

“.........”

 

“.......죄를 지은 적이 있습니까?”

 

 

허크가 다시 물었지만 헤기가 침묵했다. 허크는 헤기가 별 말이 없자 이번에는 변호사 쪽으로 걸어가 검사 복을 벗고 변호사 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피고인은 허크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허크가 아닙니다. 중계상인에게서 임무를 받아 행했을 뿐이고 그 때 당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물건이 마약이었단 사실을 모른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조직원리스트에 올라가지 않은 선량한 일반 시민이며 과거에 이러한 일을 행한 적이 일체 없습니다.”

 

 

헤기가 변호사흉내를 내는 허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3년 전 사람 하나 없던 빈자리에 헤기대신 있었어야할 허크가 서있다니 너무 아이러니했다. 그 때도 변호사가 있었다면 헤기에게 저런 변호를 해줬을까? 내편 하나 없던 그 곳에서 헤기의 편을 들어주며 부당하다고 외쳐줄 자가 있었느냔 말이다. 어느새 헤기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나왔다.

허크는 마지막으로 재판관자리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피고인은 마약을 운반하는데 가담하긴 했지만 그 사실을 몰랐으며 조직원도 아니고 허크 본인도 아니며 그에 제시된 범죄를 한 적이 없다는 것으로 판결되어 무죄를 선고한다.”

 

 

허크가 판사봉을 치자 헤기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그때 내가 누명 쓴게 미안해서 그러는 거라면 꺼져버려! 아니 나한테 이럼 안돼!! 안된다고!! 그 일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거 잖아. 당신 때문에.....”

 

 

 

지금도 허크는 탈옥한 탈옥범으로(헤기가 한 짓이지만) 경찰들이 쫒고 있는 신세였고 워낙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허크의 곁에 붙어있던 덕분에 헤기는 지금 까지 안전하게 있으며 그 결과 이 모든 걸 만들어낸 장본인이 허크라는 걸 잊은 채로 안일하게 있었다.

헤기가 고개를 숙이고 엉엉 소리 내 울었다. 억울해, 근데 이 세상 그 누구도 내편을 들어주지 않았는데.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걸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허크, 그밖에 없었다.

 

헤기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울었다. 그런 헤기를 허크가 번쩍 안아들어 판사자리에 앉히고 자신은 피고인석에 앉아 헤기를 올려다 보았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의 죄를 말씀해 주십시오.”

 

 

 

한참을 울던 헤기는 새빨갛게 부은 얼굴로 허크를 노려보았다. 저 가증스러운 사람.

 

 

피고인은 오래전부터 악질의 범죄를 일삼으며 폭력집단의 우두머리로써 행동을 해왔고.... 그 죄목이 심히 많으며 쓰레기같고.... 엿같고...지랄같으니.............

 

 

 

 

 

사형에 처한다.”

 

 

 

 

 

 

 

-------------------------------------------------------------------

 

 

 

 

 

 

호텔로 돌아온 헤기는 눈가에 얼음을 대고 누워있었다. 너무 부어 눈이 잘 안 떠지는 바람에 허크가 호텔까지 헤기를 업고 왔다.

3년전 서로의 잘잘못을 따져보자고 말했던 허크가 이제야 떠올랐다. 이제 헤기는 그 시절의 깨끗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허크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때릴 줄 알고 비열하게 행동 할 줄도 안다. 이젠 허크나 헤기나 별반 다를 바가 없어진 와중이지만 그 재판은 3년 전의 죄를 가리는 재판이었다.

 

 

재판장님 이제 제 목숨은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 닥쳐요,.. .”

 

 

호텔에 와서도 재판놀이에 심취한 허크가 얄미워 헤기가 욕설을 내뱉었다. 허크는 재판장님 재판장님 정녕 절 죽이실껍니까? 하고 헤기의 다리를 붙잡았다. 이 사람이 진짜!!!

 

 

눈은 좀 가라않았냐.”

 

“........”

 

허크가 큰 손으로 헤기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이리저리 살폈다.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 대 헤기가 뒤로 살짝 허리를 뺐지만 다시 다가오는 바람에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헤기가 침대에 걸터앉자 허크도 따라 옆에 앉았다. 그리고 짐짓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헤기, 말해줄게 있어,”

 

뭔데요.”

 

그 영감탱이가 우릴 못 쫒아오게 하는 방법이 있어.”

 

 

헤기가 그런게 있었으면 진작 하지 그랬냐고 허크의 등짝을 쳤다. 추격자 있다며! 허크가 일부러 맞아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일단, 나는 이중국적자야. 이 나라에서 원래 태어났는데 헤기 너와 내가 살던 그 나라에서 오래 살아서 시민권도 얻었지.”

 

그래서요...?”

 

저쪽나라 국적을 포기했다. 난 이제 외국인인 셈이지. 저 나라에. 그리고 국제법상으로 외국인을 체포하려면 그 나라의 허가가 필요하게 돼. 근데 저 영감탱인 경찰도 군인도 이제 뭣도 아니니 쫒아오려면 엄청 힘들 거다. 뭐 거리도 멀어서 제대로 쫒아오고 있으려나.”

 

 

헤기는 허크의 말을 듣다가 문뜩 그럼 거리에서 봤다는 추격자들은 뭐지? 하고 의문이 들었다.

 

 

그냥 니가 쪼는게 귀여워서.......”

 

 

헤기의 조그마한 손이 허크의 명치를 가격했다. 헤기는 그럼 시간만 지나면 어느 정도 안전해진다는 소린가 싶었다. 그런데 허크는 이제 외국인이 됐다면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는 소리인가. 흩어진 조직원들은? 헤기는...? 지금 허크랑 같이 있는 자기는 아직 그 나라 국민이 아닌가?

 

나는요? 허크는 그렇다 치는데 나는 붙잡히면...!”

 

아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나랑 결혼하면 너도 이 나라 국민이 돼.”

 

 

 

자기는 어쩔꺼냐 물으려던 헤기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뭐라고?

 

결혼??”

 

그래.”

 

누가?”

 

너랑 나

 

“???????”

 

 

얼굴이 일그러지며 물음표를 내뿜는 헤기에 앞에 허크가 아까 낮에 챙겼던 서류를 보여주며 더욱 황당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게 우리 혼인신고서다.”

 

 

 

 

헤기의 두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미 완벽하게 지장까지 찍힌 서류는 통과되어 법적으로 허크와 헤기는 부부사이가.......되었음을.....증명합니다.... 이 난리가 나있었다. 지장은 언제 찍은거지? 찍은 기억이 없는데.

 

 

자는 사이에 몰래 찍었지.”

 

 

이 결혼은 사기야!!!무효라고!!!! 헤기가 울부짖었다.

 

 

아 참, 이 나라 법상 부부 중 한사람이 진 빚은.......공동 책임이야.”

 

??”

 

헤기 너 때문에 나도 빚쟁이가 되었다 이 말이지. 어떡할 거야?”

 

...누가 그러게 멋대로 결혼하랬어요?!!”

 

어쩔 수 없지. 이거 다 내가 갚아야겠네. 근데 넌 빚이 없어지지만 난 갚아봐야 별로 얻는 것도 없고~ ”

 

...만지지 읏....마요!”


 

 

허크가 헤기를 어느새 침대로 쓰러트리고 허벅지를 슬금슬금 만지고 있었다. 허크 품안에 전부 들어오는 헤기의 위로 깊은 그늘이 졌다. 헤기가 마구 주먹을 휘두르며 허크를 밀어 냈으나 허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때, 이제 부부가 된 마당에. 정부보다 더 찐한 일을 해도 괜찮은 사이잖아?”

 

 

하룻밤에 천만원. 헤기가 허크가 흘렸던 농담을 기억해냈다.

허크의 입술이 어느새 헤기의 입술을 삼켰다.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허크가 헤기를 꽉 껴안고 놓지 않았다. 난생처음 해보는 키스에 헤기가 앓는 소릴 내며 숨을 헐떡였다. 잠시 떨어진 입새로 이상한 신음소리가 나 너무 놀라 그만 혀를 깨물어 버렸다. 혀를 씹힌 허크가 윽 하고 입을 떼더니 비릿하게 웃으면서 혀를 씹을 정도로 좋았냐고 물었다.

 

지금까지 만원 어치...... 구백구십구만원 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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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냥썰로 풀어서 추가해놓는 부가적인 설정들




허크조직은 마약밀매는 안함.

근데 헤기가 잡혀갔던 그 사건은 허크가 박살낸 다른 조직에서 벌인 일.(경찰에신고도 쟤네가)

허크가 그냥 쎄해서 얼빵한 대역구하다가 헤기가 얻어걸린거.

그리고 그 조직은 대부업을 했는데 이게 악질이라 한번 걸리면 회생 불가능 할정도로 어마어마한 이자와 빚을 지게됨. 그걸 도박에 밎힌 헤기형이...(형=에일) ......에일 정말좋아합니다..에일사랑..나라사랑..

그리고 그 조직이 괴멸하면서 그 대부업에 묶인 빚이 사라지게 됨. 두 업체정도 거쳐서 빚이 업자에게 가기때문에 헤기도 자세한 출처를 몰랐음.

그리고 그 빚이 사라졌단 소리를 허크가 헤기에게 하고있지 않습니다.^^*


조직원들에게는 미리 돈을 나눠주고 고향이나 해외로 피신가라고 언질을 놓았습니다.

=허크: 우리 찾지마 새끼들아



그리고 이후 백만원어치, 삼백만원어치, 날이갈수록 수위와 진도를 높여가고 합방하느날 천만원어치라고 허크가 이야기 하겠지 뭐 귀후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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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넌.”


 허크는 안 그래도 사나워 보이는 인상을 더욱 더 구겼다. 막 거래를 끝내고 온 터라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사무실에 숨어든 쥐새끼 한마리가 태연하게 쇼파에 앉아서 문을 연 자신과 눈이 마주치며 ‘왔다!’ 따위의 인사를 지껄이는 것을 발견했을 땐 어이가 없었다.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은 미친 어느 쌔끼인지는 모르지만 바깥에 세워둔 경비원들은 조져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단숨에 쇼파에 앉아있는 녀석에게 다가가 목을 비틀어 쥐고 일으켜 세웠다. 


 “어디서 보냈지?”


 잡아 뜯어 먹어버릴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녀석은 한 팔로도 거뜬히 들 수 있을 만큼 비리비리했고 저항한답시고 양팔을 휘두르지만 솜방망이보다도 못했다. 나이도 열여섯, 많아봐야 열 입곱 먹었을 것처럼 어려 벌써부터 이런 세계에 뛰어들다니 니 놈 운명도 기구하군 이라고 생각했다.


 “헉!!! 이게....무슨!!”


 녀석은 허크가 자신을 들어 올릴 줄 몰랐는지 ‘뭐야 뭐야 이거왜이래??!!!’ 라며 계속 시끄럽게 소리를 질렀다.


 “닥쳐.”

 “윽..... 이거...좀..노 놓코....”

 “말해, 어떤 개새끼가 널 보냈지?”

 “....ㅎ...학..”

 “학?”

 “하......누...으...늘에서..”

 “하늘? 그런 자식들이 있었나?”


 허크는 녀석의 양 손목을 꺽어 쇼파에 내동댕이 쳤다. 녀석은 죽는 소리를 내며 쓰려졌고 허크는 그 위로 올라타 안주머니에서 단칼을 꺼내 목에 대었다. 날카로운 느낌이 목을 스치자 녀석은 당황하며 말했다.


 “윽!! 잠시, 잠시만! 어떻게 이럴수가.. 어떻게 날 보고 만질 수 있는거야? 너 인간 맞아?”

 “뭐?”

 “아니 그보다 여기에 ‘허크’라는 어린애는 없어?”

 “내가 허크다.”

 “.......!!”



 녀석은 잔뜩 얼굴을 구기며 ‘뭔가 오류가......영감탱이들 젠장!! 능력도 빼앗아 버리면 어떡하자는거야?!!?!!!’ 라며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약간 모자란 놈 같아 보이는데 누가 보냈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보낼 수 는 없었다. 허크는 목에 댄 칼을 점점 찔러 넣으며 말했다.


 “누가 보냈는지 뭣 때문에 왔는지 지껄이면 1초라도 오래살고. 아니면 지금 바로 멱을 따주고.”

 “으읏 아파....”

 “울어도 소용없.......”

 "아파, 아프다고. 흑.....흑...."


소년은 눈물을 뚝뚝 떨어 트리며 펑펑 울었다. 뭔가 서럽기도 하고 무서워서 덜덜 떨기도 했으며 

그 순간 허크는 녀석의 등이 희미하게 빛나는것을 깨달았다. 빛은 날개죽지에서 부터 발현하여 곧 등 전체를 뒤덮고 강렬한 빛때문에 눈이 멀것같은 허크는 재빨리 일어나 한걸음 물러섰다.

설마 폭탄인가? 허크는 곧바로 뒷걸음질 쳤지만 빛은 곧 사라졌고 녀석의 등에서 새하얀 날개가 돋아난것을 볼 수 있었다. 

허크는 그 모양새를 보고 다시 한번 물었다.


"뭐야, 너."

"....흑....흡....수호천사..."

 

 그 날 밤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


"이름"

"헤기"

"나이"

"여기 나이로 말해야해? 그럼 열 일곱."


허크는 이마를 짚었다. 안 그래도 진짜 나이보다 들어 보인다고 오해받는 이마 골이 더더욱 구겨졌다. 허크는 울음을 멈춘 헤기에게 대충 서랍에서 굴러다니던 초콜렛을 쥐어주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넌 아직 수습 수호..천사인데 하늘에서 좆같이 행동......아니, 사고를 쳐서 천사링을 빼앗기고 강제로 내려보내진거다? 날개는 있지만 날 수는 없다? "

"응, 그리고 수호천사는 아이들 소원을 다 들어줘야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어."

"그런데 네가 소원을 들어줘야하는게 '허크'다?"

"그렇다니까. 내려올땐 분명 아이들방에 내려가게 되어있다고 배웠단말야. 허크라는 어린애 소원을 열개 들어주면 된댔는데......."


헤기는 허크의 눈치를 보며 힐끔 쳐다보고 궁시렁 거리며 말했다.


"웬 아저씨가 있는건지...."

"뭐?"

"아니야...아무것도...."


 자신을 헤기라고 말한 녀석은 꼼지락거리며 쇼파에 앉아서 허크가 쥐어준 초콜렛을 한개 두개 까먹었다. 이런거 이빨썩는다고 천국에선 못먹게 했는데! 하며 좋아하니 이를 지켜보던 허크는 심란해졌다. 머리가 살짝 돈 애라고 치기에도 저 등에 펼쳐진 날개가 이를 막았다. 분장이나 속임수인줄 알고 아까 잡아뜯어 보려 했으나 헤기가 울고불고 아프다고 난리치며  매달려 왔다. 부드러운 깃털의 감촉이나 강제로 옷을 벗겨 확인해보니 정말 등에 착 달라 붙어 있는것이 진짜 날개가 맞는 듯 했다. 


"소원"

"응?"

"그건 다 들어 줄수 있는거냐? 돈이라던가 누굴 죽여달라거나."

"그......그런건 못하는데..."

"쓸모없군."


 헤기는 허크의 냉담한 반응에 침울해졌다. 어짜피 천사링도 없으니 평소에는 해줄수 있던 소원들도 들어주지 못할것이다. 하물며 아이도 아닌 어른의 소원을 아무 능력도 없는 헤기가 들어 줄수 있을리 만무했다. 

 허크는 귀찮은건 딱 질색이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아무 소원이나 빨리 빌어 저 귀찮은 존재를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는게 편했다. 


"그럼 당장 그 날개 없애봐. 소원이야."


 허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헤기의 등에 달려있는 날개 한 쌍이 빛나며 사라졌다. 헤기는 손을 뻗어 자신의 등을 만져보더니 이제 됐어?? 하고 물어 왔다. 정말 자신이 말하는대로 이루어 지자 허크도 조금은 기분이 풀려 바로 다음 소원을 말했다.


"이리와서 땅바닥에 무릎꿇고 앉아."

"그건 명령인데."


허크는 이빨을 잘근잘근 씹으며 다시 말했다.


"소원인데 무릎꿇고 앉아줬으면 좋겠군. "


헤기는 그 즉시 허크의 앞으로 가서 의자에 앉아 있는 허크를 올려다보며 무릎을 꿇었다. 허크는 씩 하고 웃으며, 


"바닥이나 청소해줘."


라고 말했다.


그  날 밤 허크는 헤기에게 그 넓은 사무실을 걸레 한개로 모두 닦게 만들었다. 여기 닦아라, 저기가 더럽지 않냐, 빡빡 못 닦냐 등등 허크의 이유없는 괴롭힘(?)에 무릎을 꿇고 몇시간을 기어다녔다. 청소가 끝나고 긴 시간끝에 일어나려던 헤기는 다리에 힘이 풀려 엎어져 넘어지고 말았다.  울고싶었지만 의자에 앉아서 자신을 뚫어져라 노려보는 허크때문에 울 수가 없었다. 저런 못된인간. 소원이라는 핑계를 대고 자신을 놀려먹고 있는것 같았다. 하늘에 있을때 배운건 아이들이 원하는 소원을 들어줄수 있는 방법들 뿐이었는데...어른이 진정으로 원하는 소원은 혹시 이런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건 허크라는 사람은 못되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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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기의 허크 관찰일지>

1.허크는 못 되 처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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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날 아침 허크의 방 쇼파에서 기절하듯이 잠들고 일어난 자신을 보고 이건 뭐냐고 묻는 수 많은 남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학교에서 배우던 '아이가 만나게 해서는 안되는 사람들'책에 실릴 것 같은 외모의 사람들을 보고 기겁하며 허크뒤에 숨었다.  남자들은 헤기의 그런 행동을 보고 허크를 한번 쳐다보고 다시 허크의 다리에 딱 붙어 안떨어지는 헤기를 보고 또 다시 허크를 보며 말했다.


"본부장님........"

"왜."

"아무리....그래도....이번 애인은 좀 어린것같습니다."

"뭐??"

"저희가...이렇다쳐도..이건 범죄..."

"시발, 아니야! 새끼들아!"


허크는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천사라고 하자니 미친놈 취급 받을것같고...금방 돌려보낼텐데 사실대로 말해서 귀찮게 만드는 것도 질색이고. 


"....사촌동생이야." 


자신의 다리에 붙어있던 헤기가 그 말을 듣고 움찔 거리는게 느껴졌으나 허크는 무시했다. 허크의 한마디에 남자들은 미심쩍다는 눈치를 보내왔으나 허크가 한마디만 더 지껄이면 죽여버리겠다는 눈빛을 보내오자 인정하고 넘어갔다. 허크는 그 때까지도 자기 다리를 꼭 붙잡고 있는 헤기를 떨궈내며 애 아침밥이나 챙겨주라고 소리치고 방을 나가버렸다.



그 이후부터 헤기는 허크네 사무실의 도련님으로 불렸다. 사무실에 안어울리는 외모의 헤기를 본  손님들은 헤기에게 관심을 가졌으나 곧 허크의 사촌동생이라는 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헤기는 바쁘다며 자신에게 관심도 안 가져 주는 허크때문에 허크의 부하들과 친해졌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남자들은 헤기에게 맛있는 오믈렛도 해주고 초코칩도주고 딸기우유도 줬다. 헤기가 심심할까봐 카드게임도 알려주고 젠가라는 게임도 같이해줬다.

'착한 어른 대 백과사전'에 나오는 일들만 해주는 어른이 나쁜 어른 일리가 없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면 나쁜짓이라고 했는데, 헤기는 자신이 부끄러워져 반성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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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기의 허크 관찰일지>

2. 부하아저씨들은 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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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크는 온종일 바쁘게 집무실에서 서류과 씨름하랴 손님접대하랴  정신이 없었다. 밤이 되서야 방 한구석에서 부하놈이 쥐어주고 간 게임기를 뿅뿅거리며 하고있는 헤기가 눈에 띄었다. 할일없이 노는 모양새가 괜히 심술이 나 헤기를 불렀다.


"야."

"왜에~?"


자신은 쳐다 보지도 않고 게임기에 머리가 들어갈것처럼 들여다보며 건성으로 대답하는 헤기가 허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 쳐다봐. 소원이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헤기가 고개를 들어 허크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게임기에서는 게임오버라는 소리가 들리고 헤기가 힐끔 게임기를 쳐다보곤 어깨가 살짝내려갔지만 허크의 입꼬리는 올라갔다. 은근 기분 좋단 말이야. 이거.


"이리와봐."


헤기가 냉큼일어나 쪼르르 달려와 허크의 앞에섰다. 허크는 말 잘듣는 작은 강아지가 생긴것같아 뭐 나쁘진 않네, 하고 생각했다.


"왜, 거짓말 했어?"

"뭐?"


헤기가 대뜸 물었다. 거짓말? 


"왜, 사촌동생이라고 한거야?"

"아아..."

"거짓말 하면 나쁜아이랬는데....아니지 허크는 어른이만, 그래도 거짓말하면 안돼."

"세상엔 착한 거짓말도 있어."

"씹...그런건 안 배웠어."


 욕하는건 괜찮고? 허크는 곰곰히 생각했다. 저는 알까 만약 사실대로 헤기를 소개 했다면 오늘 자기에게 행해진 허크부하들의 모든 호의가 없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더 더욱...


"내가 만약 널 천사라고 말했다면 넌 오늘 내 방에 못 들어 왔을 껄."

"하?? 왜?"


아이처럼 되 묻는 헤기에게 허크는 뭐라 답해줄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알아들으려나....허크는 잠시 생각하다가 헤기의 손목을 잡고 끌어당겨 앉아있던 자신의 허벅지에 앉혔다. 역시 자신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알려주는게 편한 사람이었다.

허크는 헤기의 허리를 끌어당겨 헤기의 목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숨을 들이키자 헤기가 살짝 움찔거렸다. 뭐하는 거냐고 묻는 헤기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살짝 댔다가 떨어트렸다. 허크에게 안 어울리는 조심스러운 베이비키스였다. 입술을 다시 헤기의 눈가에 맞추고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와 코끝을 스치고 다시 입술에 닿았다가 서로에게 들릴만한 소리가 나며 떨어졌다. 

허크는 헤기가 당황하길 빌며, 한편으로 기대하며 상의로 손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당황해야할 헤기가 웃으면서 허크의 얼굴을 붙잡고 뺨에 쪽 하고 키스를 날리며 내뱉은 말에 기어코 얼이 나가고 말았다.


"goodnight."





첩첩산중이었다. 애가 그렇게 그쪽으로 띨빵....아니 때 묻지 않아서야. 혀를 집어넣고 키스할껄 그랬나, 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쇼파에서 곤히 자는 헤기를 쳐다봤다. 허크가 누우면 팔다리가 다 튀어나오는 쇼파에 헤기는 과장 조금 보태서 데굴데굴 굴러도 좋을만큼 컸다. 대충 굴러다니던 담요를 덮어주며 허크는 진짜 굿나잇 키스를 헤기의 이마에 해주고 일어났다. 

정말 애 하나 키우는 기분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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