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루트주의 오빠드립주의.... 


FEVER

 

1.

 

어느 날 부터 사람들 머리위에 링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링을 볼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이후, 나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거리를 보며 링에 대해 나름대로의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링이 없는 사람은 없었다. 갓난아이이건 90대 노인이건 여자, 남자 상관할 것 없이 모두 링을 머리에 달고 다녔다. 링이 어떻게 생겼냐고 물으면 간단하게 흔히 우리가 책이나 그림에서 보는 천사 링을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링은 각자의 손바닥 만한 크기에, 머리 위 10cm에서 20cm 사이정도 떠 있었다.

근데 신기하게 그 링은 재질이 고체도 아니고 액체도 아니고,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흔들 흔들거리며 링의 형체를 갖추고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사람들의 연령대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는 것이다. , 물론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이라는 건 아니다. 링은 전부 빨간색으로 통일되어있었다. 단지 어린아이는 밝은 빨간색이었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갈색에 가까운 빨간색으로 변하는 것 이었다.

 

 

내 눈으로 직접 보는 사람은 링을 볼 수 있었지만 거울이나, tv, 사진 등으로는 링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링을 볼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겠지만, 지금까지 나 말고는 링이 보이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물론 확인해보지 않아도 내 머리위엔 링이 존재할 것이고 내 나이 또래들과 비슷한 빨간색일 것이다.

 

이렇게 며칠간 거리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얻은 자료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집으로 돌아가려할 때 저 멀리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검은 링이 나타났다.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간혹 가다가 죽을 날이 얼마안남아보이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야 거무튀튀한 빨간색 링을 가지고 다니시곤 했지만 저렇게 완벽한 검은색 링은 처음 봤다. 적어도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시간들 속에서는.

 

 

앉아있던 카페 2층 테라스에서 내려와 검은 링을 가진 남자를 쫒아가기 시작했다.

혹여나 놓칠세라 전속력으로 달려 숨이 차올랐지만, 그 순간 나는 묘한 흥분감에 휩싸여 제멋대로 발이 나가고 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색을 가진 사람이다. 분명 링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링 말고도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처음에는 기쁜 마음에 주위상황을 분별할 정신이 없었으나, 검은 링을 뒤 쫒으며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는 무언가에 쫒기 듯이 뛰었으며, 곧 서둘러 골목길로 향했다. 그리고 이곳 지리를 잘 몰랐던 나는 잠시 그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내 귀에는 남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놀란 나는 서둘러 소리가 나는 골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코너를 돈 그 순간 내가 본 것은

 


 

하얀 링의 남자가 검은 링의 남자를 살해하는 장면이었다.

 

 

 


**

 

헤기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며칠째 똑같은 악몽에 시달리는 탓이었다. 며칠 전 사람들 머리위에 동동거리며 떠있는 링에 대해 나름대로 조사 따위를 해본다고 설쳤다가 안 좋은 일들만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날 골목에서 비명소리를 듣고 곧바로 달려갔다. 검은 링의 남자가 누군가에게 쫒기는 건 알아챘으나 그게 살인 위협일 줄은 몰랐었다. 안일하게 생각했던 헤기는 자기 자신을 꾸짖으며 달렸고, 코너를 돌자마자 찐득하고 괴팍한 사운드가 헤기의 귓가를 휩쓸었다.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헤기는 자신에게 이런 반사 신경이 있었나 하고 스스로 놀랄 만큼 재빠르게 벽으로 숨어 토악질을 참아내야만 했다.

벽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서는 계속해서 하얀 링의 남자가 살인을 하고 있는 건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알 수 없는 공포가 밀려오고 온몸에 식은땀이 나 이미 옷은 반쯤 젖어있었다.

헤기는 이곳에 오고 오늘 처음으로 본 검은 링이 갑자기 나타난, 그도 오늘 처음 본 하얀 링에게 살해당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공황상태에 빠진 머리는 돌아가기를 거부했고

왜 링에 대해 알아본다고 기어 나와서 이 고생인지 자기 자신이 참으로 바보 같았다. 링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서 한숨자고 싶었다. 도망을 가야할 것 같은데 온몸이 경직 되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주 한마디로 좆같았다.

 

 

 

그리고 더 좆 같 은건 아까 하얀 링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는 것이다.

 

 

 

2.

 

 

그 순간 주위가 고요해졌다.

 

 

헤기는 헉하고 숨을 멈추었다. 눈을 마주칠 때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하얀 링의 남자는 자신을 보고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위험하다는 적신호가 머릿속을 울리고 도망 가야한다는 생각이 굳어버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헤기는 그 즉시 미친 듯이 달려 골목을 빠져나왔다. 땀에 절다 못해 뒤집어씌워진 꼴을 하고 거리로 나와 인파 속에서 힘이 빠져 쓰러질 때까지 다행히도 하얀 링의 남자는 헤기를 쫒아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 밤을 꼴딱 세운 헤기는 경찰서로 달려갔다. 어제 골목길에서 살인이 일어났으며, 자신이 살인현장의 목격자가 되었는데 그 범인이 자신의 얼굴을 봤으니 신변보호를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경찰은 헤기를 망상증환자로 취급하며 쫒아낼 뿐이었다.

 

 

이유인 즉 헤기가 경찰서에 와 사건을 이야기한 순간은 경찰서도 난리가 났다. 평소에도 치안이 좋기로 유명한 이 도시는 최근 몇 년간 이렇다할만한 사건조차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건이 사실이라면 도시의 명성이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 분명했다.

놀라 우왕좌왕하는 경찰들을 이끌고 어제의 사건현장으로 향했으나, 골목에 도착한 헤기는황당함에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골목은 어제의 일이 마치 잘못 본 것인 마냥 깨끗했고, 사방으로 튀겨져있던 핏자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닦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깨끗해서 처음부터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같아 헤기의 머리가 띵 하고 울렸다.

피해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경찰들의 훈계를 받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

 

그 후 헤기는 지금까지 하얀 링의 남자가 나오는 악몽을 꾸었다.

 

하얀 링의 남자는 얼굴부터 발끝까지 검정색 옷을 입고 거대한 대검을 들고 자신을 쫒아왔다. 헤기는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곧 잡히고 만다. 그리고 검은 링의 사내는 자신을 그 대검으로 난도질 하는 것 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귓가에 뭐라고 속삭이는데 헤기는 꿈속에서도 그가 찌르는 부위가 너무 아파 그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그렇게 악몽을 꾸고 일어나면 소름 돋게도 정말로 온몸에 희미한 생채기가 나있는 것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어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사람들 머리위에는 빨간 링이 떠다니고 있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하루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로 거리가 시끄러웠다.

헤기가 살고 있는 곳은 집이라기 보단 상가건물2층에 있는 사무실이었다.

20평 남짓한 사무실은 큰 창문 앞에 책상과 책장이 있었고, 책장에는 책들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손님접대용 쇼파와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조그맣게 딸린 옆방에 침대와 옷장이 있었다.

다른 직원 없이 헤기혼자서 운영하는 이 정체불명의 사무실은 지난 한 달 동안 단 몇 명의 손님만이 왔다 갔을 뿐이다.

 

 

띠리리리 띠리리리리리리

 

 

책상 한쪽에 놓여 진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지낸, 한동안 조용했던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

 

 

 

“...뭐야..?...........”

 

 

받자마자 전화가 끊겼다. 며칠 밤을 제대로 자지 못한 헤기는 짜증이 났다. 안 그래도 꿈에서 나오는 그 하얀 링을 한 사이코 때문에 무서워서 밖에도 제대로 못나갔다. 생각해보니 사무실에 조그마한 냉장고에 있던 음식들도 다 먹어서 배가 고팠다.

밖에 나가기는 죽기보다도 싫었지만, 정말로 먹을게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던 터라 헤기는 나갈 채비를 하고 자주 가던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이 도시에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부모님도 안 계신 헤기는 거의 혼자서 다닐 수 있는 식당을 찾았다. 그 중에서도 사무실에서 도보로 5분정도 떨어진 이 조그마한 식당은 아침에는 샌드위치나 주스를 팔고 점심에는 간단한 식사를 그리고 저녁에는 주류를 파는 곳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다 해도 침대에서 너무 밍기적 거렸는지 벌써 식당의 메뉴는 점심특선이었다.

 

 

고기가 주를 이루는 메뉴를 시키고 헤기는 습관적으로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리보아도 저리보아도 사람들 머리위에는 검은 링과 하얀 링은 보이지가 않았다.

 

그냥 내가 헛것을 본건가...”

 

 

경찰들에게 망상증환자라고 욕을 먹고 쫒겨 난 후 다시 한 번 그 곳에 가보았지만 핏자국 하나 남아있지 않고 먼지만 날릴 뿐 이었다. 이쯤 되니 정말로 자신이 잘못 본 것 인가하고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때 자신에게 들린 식당 안쪽 테이블에서 나는 대화소리만 아니었으면 말이다.

 

 

 

 

자네 머리 꼭대기에 달린 가락지에 대해 들어 봤는가......? 우리 마누라가 미쳤는지 갑자기 사람들머리위에 천사님 링이 보인다 카더라는거야........................더 웃긴건 그 링이 검붉으면 검붉어질수록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하더라 하면서 나보고 조심 하라지 뭔가 글쎄.”

 

재밌는 이야기군 그래.”

 

껄껄

 

 

 

서너 명의 남자들이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요즘 마누라가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해서 피곤하다며 너스레를 떠는 남자의 이야기를 들은 다른 남자들은 친구가 지어낸 재미난 이야기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기분 좋게 웃으며 넘기고 있었다.

 

더 미치겠는 건 마누라 회사에 딱 한명 검은색의 링이 있었다 라는 걸세. 근데 아무도 그 사람이 누군지 몰랐다는 거야. 글쎄, 아니 그런 사람이 존재했는지도 몰랐다고 하는군. 여지껏 같이 일을 해왔는데도 말이야!”

 

 

헤기는 음식이 나 온지도 모르고 한 글자라도 빼먹을까 집중해서 대화를 엿들었다. 듣자하니 저 아저씨의 아내 분은 저와 같이 링을 볼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헤기 자신보다 링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이쿠 벌써 시간이, 나는 먼저 가봄세.”

 

잘 가게나.”

 

조심히 들어가게.”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는 시간이 늦었다며 서둘러 일어나 가게를 나섰다. 가만히 듣고 있던 헤기도 재빨리 그 남자를 뛰 쫒아 가게를 나왔다. 헤기는 그 남자의 아내 분을 만나고 싶었다.

 

저기요!!!!!잠시 만요!!”

 

뛰다시피 걸어간 헤기는 남자를 불렀다. 남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못 들었는지 계속 걸어갔고 헤기는 남자의 어깨를 잡아 불러 세웠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일어난 광경은 믿을 수가 없을 만큼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헤기가 남자의 어깨를 잡아 돌리자 남자는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흩날렸기 때문이다.

사람이 눈앞에서 살인을 당하는 장면도 놀랍고 무서웠지만 잿더미가 돼서 날아가 버리다니!!!

헤기는 방금 자신이 본 것이 현실이 맞는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아니 왜 자꾸 자신의 주위에서 이런 이상한 사건들이 생기는 걸까. 헤기는 무서웠다. 도망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링을 보는 대가가 이런 것이라면 싫었다. 자신은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헤기는 울면서 집으로 달려왔다. 지나치는 사람들마다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무섭다. 두렵다. 사람이 자신의 앞에서 잿더미로 변했다. 자신이 만지는 바람에 그리된 것일까? 자신 때문이 아니라고 해도 그 남자가 죽은 것은 사실이었다. 보진 못했지만 집에는 예쁜 아내가 자신을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번뜩 헤기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아내는 남자에게 링의 색깔을 이야기해주며 조심하라 일러줬다. 헤기가 본 바로도 그 남자는 거의 다 죽어가는 사람의 링 색. , 갈색에 가까운 어두운 색이었던 것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그 남자의 친구들을 찾아 남자의 집으로 가야했다. 헤기는 창밖을 보았고 시간이 언제 흘렀는지 모르게 벌써 하늘은 해가 져 가고 있었다.

헤기는 쭈그려 앉아있던 쇼파에서 일어나 뒤를 돌았다. 그 순간

 

 

“Hello, 예쁜이?”

 

 

 

꿈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하얀 링이 웃고 있었다

 

 

3.

 

 

숨어 있어서 이 오빠가 찾는데 오래 걸렸잖아. 안 그래? Gray?"

 

 

헤기는 온몸이 얼어붙어 움직일 수 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도 안 났을 뿐더러 저 미친 사이코 하얀 링이 이 사무실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느냔 거였다. 혹시 헤기자신을 미행한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정체불명의 장난전화가 한 통 왔었는데 저 새끼일 수 도 있겠다 싶었다.

 

 

왜 말이 없어? 벙어리냐? 회색 링 예쁜이야.”

 

 

잠깐만요...... 회색 링이라 구요...?”

 

공포로 얼어붙었던 몸이 하얀 링의 의문스러운 말에 의해 풀려났다. 헤기는 앞에 있는 남자가 며칠 전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살해한 사이코라는 사실을 망각하고는 질문을 해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회색 링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 그새 까먹었냐? 내가 맨날 꿈에서 나타나서 귓가에 대고 말해줬잖아. 네 링은 회색이라고.”

 

“!!!!!!”

 

 

 

헤기는 하얀 링의 말을 듣고 머리를 강하게 맞은 것처럼 울렸다. 며칠 동안 꾸던 악몽이 사실은 단순한 꿈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꿈속에서 자신에 귓가에 대고 자꾸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했던게 저 말 이었나.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온 헤기는 하얀 링 또한 링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꿈에서 보았던 대검을 들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하얀 링과 동지감에 기뻐 할 수도 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도 없었다. 헤기는 속으로 욕 짓거리를 하며 슬금슬금 물러났다. 하얀링은 그런 헤기를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결국 내 손에 죽어야 하는 운명이지.”

 

 

 

 

좆 됐다. 라고 헤기는 생각했다.

 

 

 

 

하얀 링은 덩치가 헤기의 거의 세배는 될법하고 인상은 사납고 더러웠으며 드러난 근육들이 남자가 대검으로 사람을 죽이는게 아니라 그냥 맨손으로 죽인다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사실 검은 새끼들만 처리하면 된다고 그래서 예쁜이 너는 고민 많이 했어. 그래서 내린 결론은 귀여워 해주다가 죽여주자. 어때? 맘에 드냐?”

 

남자는 며칠 동안 고심한 자신의 결론이 어떻냐는 듯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헤기는 그딴 결론은 필요 없다며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왜 사람들을 죽이는거에요?!! 이유가 도대체 뭐냐 구요!!”

 

죽긴 죽더라도 왜 죽는지는 알자고 다짐하며 소리쳤다. 내가 왜! 왜 죽어야하는데!?

그러나 헤기의 질문에 내내 웃고 있던 하얀 링은 얼굴을 구기며 불쾌 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 다 까먹었군? 네 이름은 아냐?”

 

 

 

화를 내며 소리치던 헤기의 얼굴이 일순간 하얗게 되며 굳어갔다. 저 사이코는 헤기가 자신의 이름도 몰랐단 걸 어떻게 알았을까.

 

 

 

 

 

 

**

 

 

헤기 케르. 아니 나는 사실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모른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지금 있는 사무실침대에 누워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기억 상실증같이 모든게 기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애초부터 이곳에서의 기억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뜬 순간부터 인생이 시작된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고 혼란스러웠다. 헤기라는 이름도 사무실 책장에 꽂혀있던 책 들 중 아무거나 골라잡아 나온 등장인물의 이름이었다.

 

그런 와중에 어렴풋이 기억하는 것들 중 하나는 자신이 이곳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 도시 넘어 바깥세상에서 온자. 그들을 여기 사람들은 ‘virus’ 라고 불렀다.

 

사는데 목적이 없었던 헤기는 하루하루가 무료했고 심심했다. 자신은 왜 여기 있는 걸까. 무엇을 하러 바깥에서 이곳까지 왔을까.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고심하기를 어언 한 달 째 되어가고 있던 때에 링에 대해 조사하기로 결심했던 것이었다.

 

 

 

 

**

 

 

꿈에서 알려준 내 이름도 까먹었겠군? 내 이름은 허크. 멋지지? 예쁜아.”

 

 

자신을 허크라고 소개한 하얀 링은 어느새 헤기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사실 넌 죽이기 너무 아쉽다. virus주제에 이렇게 이뻐서 어떻게하냐.”

 

“virus! 바이러스! 그 놈의 바이러스가 도대체 뭔데?!!”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서있던 헤기가 별안간 고개를 들며 허크를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그 순간 사무실은 헤기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불어 닥친 바람에 휩쓸렸다. 책장에 꽂혀진 책들이 떨어지고 가구들도 흔들거리며 밀릴 만큼 강한 바람이었다. 사무실을 난리법석으로 만든 바람의 출처는 놀랍게도 헤기 자신이었다. 헤기 주위로 나타난 수많은 검의 환영들이 일으킨 바람이었다.

 

 

이제야 예쁜이답네.”

 

 

 

허크는 이제야 제대로 즐길 수 있겠다며 입맛을 다시고 헤기를 향해 대검을 쥔 손을 뻗었다.

 

 

지금부터 오빠랑 놀아볼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허크라는 사내는 괴팍하고 미친놈이었다.

그는 큰 덩치에 비해 날렵했고 대검을 자유자재로 휘둘렀으며 허공에서 쉴새없이 나타나 헤기를 향해 날라왔다. 좁은 사무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피하던 헤기는 아슬아슬하게 한두 번씩 피하지 못해 온몸에 상처가 나 피를 흘리고 있었다. 헤기가 검에 스쳐 신음을 흘리면 그 모습을 보던 허크는 기분 더러운 웃음을 흘렸다. 마치 일부러 한두 개씩만 맞추며 헤기를 가지고 노는 것 같았다.

 

 

 

예쁜이가 너무 잘 피해서 이 오빠가 다 무서운걸?”

 

허크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기만 하던 헤기는 자신을 여자 취급하며 놀리는 말투에 울컥 화가나 몸을 돌려 허크를 노려보았다.

 

, 그럼 이젠 내 공격도 피해보시던가!”

 

 

환영 검들로 바닥에 깔린 종이들을 날려 시야를 가린 헤기는 허크 쪽으로 빠르게 달려가 정확하게 얼굴을 노려 발차기를 날렸다.

순간, 헤기가 공격해 올 줄은 몰랐던 허크는 방심하고 있다가 가드도 올리지 못한 채 그대로 헤기의 발차기를 맞고 사무실 구석으로 밀려났다.

 

크흑..!”

 

 

허크가 밀리며 벽에 부딪히는 바람에 벽이 심하게 울려 기어코 책장이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꽂혀있던 책들도 바닥에 나뒹굴어 꼴이 말이 아니었다.

헤기는 허크와 거리를 두고 거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말을 어렵게 꺼내 물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졌더니 잿더미로...변했어. 당신 그 이유 알아?”

 

 

몸에 붙은 바람에 날린 서류를 떼던 허크의 손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헤기는 숨을 죽이고 허크를 주시했고 곧 잔뜩 구겨 진 얼굴로 허크가 대답했다.

 

 

니가 회색 링 이니까.”

 

그니까 그 게 뭐냐니까!!”

 

아 씹! 나도 잘 몰라! 나도 그냥 위에서 시켜서 이 짓거리 하는 거지! 예쁜이 네가 공무원인 오빠의 고통과 비애를 아냐!”

 

 

헤기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답해줄 생각이 없으면 그냥 닥치고 있을 것이지, 아니 도대체 어느 나라 공무원이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한단 말인가? 저 허크인지 오크인지 하는 사이코는 진정 미친 게 틀림이 없었다.

 

그럼 넌 왜 검은 링을 죽이는 거지? 그리고 당신은 어째서 하얀 링이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검정색 옷을 입고 머리까지 시꺼먼 저놈의 링 색은 아이러니하게도 하얀색이었다.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건물 안에서도 허크의 머리위에 떠있는 하얀색 링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헤기의 질문에 허크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어보였다.

 

너무 많이 알려고 하는 것도 죄야. 예쁜아

 

그 순간 허크의 손에서 눈으로 쫒을 수도 없을 만큼의 속도로 날아 든 대검에 헤기는 팔뚝을 스쳤다. 이미 여러 군데 칼에 스쳐 피를 많이 흘린 헤기는 신음을 흘리며 휘청거렸다. 그 모습을 본 허크는 기분이 상당히 불쾌했다. 방금 공격은 급소를 노리고 정확하게 날린 것이었다. 그 공격을 헤기는 환영 검을 이용해 궤도를 바꿔내어 튕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칼에 스친 헤기의 상처는 몇 분 지나지 않아 곧 바로 아물어 버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까지 상대해온 찌질 했던 검은 링들과 헤기가 차원이 다르단 사실에 허크는 긴장 할 수밖에 없었다.

 

 

나야말로 궁금한데. 예쁜이 넌 누구냐?”

 

내 이름은 헤기야. 예쁜이가 아니라.”

 

 

긴장감이 감도는 와중에 헤기는 허크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맘에 안 든다는 투로 띠겁게 내뱉었다. 허크는 그런 헤기가 귀여워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크핫! 그래 헤기. 재밌는건 시작도 안 했다.”

 

 

허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예상 했던 대로 허크가 돌진하며 대검이 날아왔고, 헤기는 서둘러 검을 만들어내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나 헤기의 몸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며 헤기의 눈에 허크의 눈이 마주쳤다. 헤기는 순간 아차 했다. 방금 전 공격은 처음부터 자신이 피할 줄 알고 한 속임수 였다. 하지만 이미 상황파악을 한 때는 늦어 허크가 그대로 헤기의 복부에 강력한 주먹을 날린 후였다.

 

 

 

크흡!”

 

 

숨이 안 쉬어질 정도의 주먹에 아픔을 참느라 깨문 입술에서 피나 흘러나왔다. 고통에 몸을 웅크리며 쓰러져 있는 헤기에게로 허크가 다가와 헤기를 덮쳐 안았다. 헤기의 어깨를 한손으로 잡아 옆으로 돌려진 상체를 바로 편 후 허크는 상체를 숙여 자신과 눈을 마주보게 만들었다. 서로의 코가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간 허크가 낮게 속삭였다.

 

 

지금부터 재밌는 놀이하자.”

 

 

허크는 그대로 헤기의 머리 뒤로 손을 넣어 고정시킨 후 입술을 맞추고 바로 혀를 집어넣었다. 헤기는 고통 때문에 잠시 입을 벌리고 있던 틈새로 들어온 허크의 혀에 놀라 정신을 번뜩 차렸다. 하지만 두 다리는 허크의 몸에 깔려 움직일 수 없었고 두 손은 허크의 한손에 묶여 위로 올라가있는 상태였다. 허크의 힘이 어찌나 세던지 손으로 결박하고 있는 자신의 손목이 금세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으윽!”

 

 

허크는 헤기의 입술을 잡아먹듯이 집어 삼 겼고 입속을 샅샅이 훑으며 헤기의 몸을 좀 더 세게 짓눌렀다. 헤기의 도망가는 혀를 붙잡아 집요하게 잡아 놔주지 않고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몰아붙이는 허크 때문에 헤기는 호흡곤란이 오기 시작했다. 귓가를 때리는 질척하고 야한 사운드에 정신을 놓을 뻔했다.

헤기는 있는 힘껏 몸을 움직여 저항하며 환영검을 만들어 냈다. 허크의 공격을 피하는데 사용되던 검이 이제는 칼날과도 같이 날카롭게 변하여 허크를 공격했고 허크의 몸에는 환영검이 지나갈 때마다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을 한 치의 틈도 없이 달라붙은 채 깔고 있는 허크를 공격하는 바람에 헤기는 환영 검을 컨트롤할 정신이 없어 그 바람에 같이 검에 맞아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그런 헤기를 눈치 챈 허크는 키스를 하던 입술을 떼고 헤기의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

 

갑작스러운 아픔에 헤기가 입을 벌렸고 바람이 잠시 잔잔해졌다.

 

헤기. 자꾸 그러면 네가 아프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이 변태새끼야.”

 

 

허크가 잠시 상체를 일으킨 틈을 타 헤기는 허크와 자신의 사이에 수많은 검들을 소환해 날렸고 허크가 반사적으로 대검을 들어 막아내자 밀리는 바람에 허크는 그대로 천장에 곤두박질쳤고 천장의 전등이 허크의 등에 부딪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도 건물이 부셔지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허크는 천장에서 그대로 추락해서 꼴이 말이 아니었다.

 

 

! 자꾸 이러면 오빠 화낸다!!!!”

 

 

허크는 얼굴에 열이 달아올라 잔뜩 성을 내며 소리쳤다. 휘두르는 대검이 통제가 안 되는지 헤기를 제대로 겨누지 못하고 벽에 꽂히기 일 수였다. 허크가 대검을 360도로 휘두르자 피할 곳을 찾지 못하던 헤기는 그대로 2층 창문너머로 뛰어내렸다. 2층 창문에서 깨져버린 유리들의 파편이 길가로 떨어진 헤기에게로 쏟아졌다. 유리가 보도블럭에 부딪히며 들리는 파편음이 귓가를 윙윙 울리고 있었다. 바닥에 부딪힐 때 순간적으로 검들을 깔아 중상은 피했지만 충격까지 전부 다 흡수할 수 없어서 헤기는 곧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쓰러진 헤기를 2층 창문으로 확인한 허크는 그대로 창틀을 밟고 뛰어내렸다. 별다른 동작 없이 가뿐하게 착지한 뒤 성큼성큼 다가가 헤기를 일으켜 안았다.

 

 

왜 이렇게 무모하냐? 회색 링이라서 그런가......”

 

 

또 링 타령이다. 그는 자신에게 링에 대해 말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러면서 자꾸 저런 소리를 해대니 헤기의 속이 타 미쳐버릴 것 같았다.

 

닥쳐. 새끼야.”

 

!!”

 

헤기는 손에 쥐고 있던 팬텀대거로 자신을 안고 있는 허크의 옆구리를 있는 힘껏 찔러 넣었다.

불편한 자세 때문에 깊숙이 찌르진 못했지만 효과가 있었는지 허크는 헤기를 안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그 틈에 헤기는 허크의 품에서 빠져나와 도망치기 시작했다.

 

 


 

4.

 

 

 

허크는 자신의 옆구리에 박힌 대거를 쳐다보며 바보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귀엽게도 자신의 배때기에 칼 빵을 놔준 헤기 덕분에 허크는 토끼처럼 도망가는 헤기를 따라가지 못했다. 상처가 대충 지혈이 끝나갈 때 쯤, 뒷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울렸다. 허크는 발신자 표시에 뜬 이름을 보고 욕을 내뱉은 후 인상을 쓰며 전화를 받았다.

 

.”

 

언제까지 귀여운 토깽이랑 놀아주고만 있을 거야. 덕분에 이쪽 피해가 심각한데.”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다. 건들이지 마. 내 먹잇감이야.”

 

 

차갑게 날이 선 목소리로 위협하듯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휴대폰 너머로 상대방이 뭐라 뭐라 하는 소리를 듣지도 않고 끊어버린 허크는 일어서서 헤기가 사라진 방향으로 뛰어갔다.

 

 

 

 

 

**

 

 

 

이상했다.

 

한참을 정신없이 달리던 헤기는 주위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보이지가 않았다. 이 시간이 되면 언제나 바깥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는데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건물 안에는 제각각 불빛들이 켜 있었지만 거리는 무서울 만큼 적막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헤기가 서둘러 길가에 있는 식당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지만,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연신 축구중계를 해주는 tv소리와 테이블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만 헤기를 반길 뿐 이었다.

 

 

미치겠네! 진짜!!!”

 

 

머릿속은 이미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계속 자신에게 일어나는 괴상망측한 일들 때문에 사고회로가 완전히 망가져버린 것 같다. 특히나 지금은 정말 울고 싶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로 나오면 혹시라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사라져버렸다. 이 도시에 헤기와 허크 만이 존재하는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상황에 헤기는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어이....거기 예쁜 토끼, 어디 가냐?”

 

 

지금 절대로 듣고 싶지 않는 목소리가 고요한 거리에 울려 퍼졌다. 절망적인 기분의 헤기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헤기의 눈에 건물 옥상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허크가 보였다.

 

 

도시가 참 조용하지. 우리 둘이 놀으라고 다들 어디 갔나본데?”

 

 

허크는 씨익 웃으며 건물옥상에서 그대로 뛰어내려 헤기에게로 다가왔다. 불안한 기운이 엄습해와 헤기는 어금니를 세게 깨물었다. 헤기는 이미 허크의 입에서 나올 말을 예상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 놀자. 예쁜아.”

 

 

 

 

 

 

헤기의 몸은 이미 한계까지 간 상황이었다. 며칠 밤을 제대로 자지 못해 피곤한 상태에서 평소에는 쓸 일이 없었던 능력까지 무리해서 써대는 바람에 체력은 밑바닥을 드러냈다. 또한, 피를 많이 흘린 탓에 당장 쓰려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현기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쉴 틈도 주지 않고 아까보다 두 배는 더 빨라진 듯한 속도로 대검을 휘두르는 허크 때문에 헤기는 이를 악물고 겨우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헤기는 날아오는 대검의 궤도를 읽고 한쪽으론 환영검으로 방어를 하면서 다른 한쪽으론 또 다른 환영검을 날려 허크를 공격했다. 허크는 이제 그만 끝을 내야겠단 생각에 두 팔을 올려 헤기의 환영 검 공격을 모두 쳐냈다. 허크의 대검이 밝게 빛나고 허크와 헤기를 둘러싸고 거리를 가득 메운 환영검이 뿜어내는 차가운 냉기에 헤기는 몸을 떨었다.

 

 

목적.”

 

 

폭풍전야와도 같은 거리에 정적을 깬 허크의 목소리가 툭하고 던져졌다. 방금 내뱉은 단어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자신만 멀뚱히 쳐다보는 헤기를 보고 허크는 혀를 찼다. 헤기에 대해 위에 보고를 해야 하는데, 허크는 헤기 같은 회색 링을 처음 본 터라 아는게 하나도 없었다. 덕분에 며칠간 미행 하느라 귀찮아 죽는 줄 알았다. 헤기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허크 저의 취향이라 꿈에서 괴롭히는 재미가 있었지만 말이다. 덕분에 곧 바로 못 죽이고 이렇게 질질 끄는 상황이 올 줄 몰랐지만.

 

 

이 도시에 침투한 목적이 뭐냐고, virus.”

 

몰라.”

 

진짜 모르는 거냐,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거냐? 능력도 야무지게 쓰던데 이 오빠는 후자에 편의점 떡볶이 1개를 걸고 싶은 기분이다.”

 

 

심각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농담을 하며 웃는 허크를 헤기는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다. 진짜 모른다고 씨댕아!!!

 

 

, 그럼 오빠가 헤기가 궁금해 하는 거 하나 알려줄게. 어때 콜?”

 

허크는 예쁜이 가는 길에 이 오빠가 큰 선물을 해주는 거라며 자신만큼 친절한 하얀 링도 없을꺼라고 그의 무서운 얼굴에서 콧김이 나올 만큼 신이 나 말했다.

 

 

 

 

 

검은 링들은 이곳 사람들을 잡아먹으려고 내려와. 잡아 먹혀진 사람들은 또 다른 검은 링으로 변하지. 그리고 나는 그런 검은 링들을 찾아내서 없애는 정의의 사도.”

 

 

헤기는 허크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저 사이코 같은 말을 믿느니 자신의 동네에 있는 막대두개 들고 다니는 동네바보 헛소리를 믿는게 백배 나아보였다.

 

 

못 믿는 눈치인데. 이 오빤 거짓말 안 해.”

 

 

공무원은 정직이 생명이거든 라고 덧붙힌 허크가 그 다음에 내뱉은 말에 헤기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까 네가 만져서 잿더미가 되었다고 한 그 아저씨도 아마 검은 링이 되어있을거다.”

 

 

 

 

 

 

**

 

 

 

허크는 벌써 며칠째 한 남자를 미행하고 있었다. 미행 이라봐야 미행당하는 당사자가 집에 틀어 박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에 건너편 건물 옥상에서 창문을 뚫어져라 주시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할 일이 없었다.

 

 

며칠 전 허크는 거리에서 검은 링과 추격전을 펼치고 있었다. 별 시덥지 않은 주제에 발만 빨라서는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통에 자신들의 뒤를 따라오는 인기척을 느꼈지만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일단 저 빡치게 만드는 검은 링부터 처리하고 졸졸 따라오는 쥐새끼를 상대해도 늦지 않았다. 어느새 골목길로 도망친 검은 링을 코앞까지 쫒아간 허크는 자신을 뜀박질 시킨 것에 대한 분노로 평소보다 좀 더 검은 링을 심술궂게 먹어 해치웠다.

 

그리고 자신을 쫒아오던 쥐새끼는 바로 벽 너머 뒤에 숨어 있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무시하고 돌려보내주었을 텐데 그 귀여운 쥐새끼는 링이 회색 이었다. 생긴건 이쁘장한 토끼를 닮았으니 쥐새끼보단 토끼라고 해야 하나. 검은색은 무조껀 죽이라는 명령 때문에 이런짓을 하고 다니는 허크 지만 회색 링은 들어 본적이 없다. 허크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귀여운 토끼는 도망을 가버렸고 토끼의 흔적을 찾아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복잡한걸 싫어하는 평소 성격이라면 회색 링이건 뭐건 어짜피 검정색이랑 가까우니까 죽여버리지. 하고 그 자리에서 해치웠을 테지만 왠지 허크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평소 같지 않은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도 놀랐다. 저 회색 링의 바이러스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의구심이 드는 허크에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 회색 링이 이곳에 온 시점부터 도시에 검은 링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이러스는 발견즉시 죽여야 하는게 맞는데 허크는 자꾸만 망설이게 되는 자기 자신이 이상했다. 저 회색 링이 허크 마저도 검은 색으로 감염시켜 버린 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

 

 

 

헤기의 볼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방금 허크의 말은 이 모든게 너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아 서러웠다. 헤기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자 허크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 예쁜아, ..왜 울어??”

 

 

당황하며 헤기를 달래보려 다가가려 했지만 헤기가 내뿜는 얕고 서늘한 바람에 걸음을 멈췄야 했다. 헤기는 수 백개의 환영검에 둘러 쌓인 채 금방이라도 주위를 얼려버릴 것 같은 냉기를 담은 바람을 뿜어내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기운에 허크가 주춤한 사이 헤기는 눈가를 소매로 쓰윽 닦아낸 후 허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착각 하지마. 변태 싸이코야. 누가 죽어준데?”

 

 

 

거리에 사람이 한 명도 없는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헤기의 주위에는 수 백개의 환영검이, 허크의 주위에는 허크가 만들어낸 밝은 빛이 감싸고 있었다. 둘은 서로의 눈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헤기의 울분어린 눈빛을 허크는 광적인 집착으로 쫒아 옭아매었다. 어느 한명이라도 입을 떼는 순간이 아마도 마지막 종소리를 울리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종소리를 울린 사람은 헤기였다. 대치하던 수 백개의 환영 검이 목표를 향해 돌진했고 곧 거대한 충돌 음과 함께 거리는 매캐한 먼지로 가득 찼다.

먼지가 걷히고 모습을 드러낸 거리엔 새빨간 핏자국과 거리의 잔해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헤기는 눈을 들어 허크 쪽을 쳐다보았다. 환영 검이 일으킨 흙먼지에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쓰러져 누운 채 눈을 다시 돌린 헤기는 부들거리는 팔다리를 일으켜 상체를 들었다. 두 팔과 다리로 엎드려 땅을 짚은 헤기는 피를 토해냈다. 몸에 박힌 수십개건물 잔해에 헤기는 거의 기다시피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새 흙먼지가 가라앉아 허크도 건물 잔해를 치우며 나왔다.

 

 

제법이네...... 예쁜아. 이 오빠가 이렇게 힘들..........”

 

 

 

 

 

 

 

 

 

!!!!!!!!!!!”

 

 

 

 

 

 

 

허크가 쓰러진 헤기를 보며 말하던 찰나, 익숙한 금속기계에서 나오는 파괴음이 강하게 들렸다. 허크는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헤기 또한 고개를 돌리려했지만 심장을 꿰뚫는 강력한 충격에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쓰러진 헤기의 밑으로 끈적한 핏줄기가 쉴새 없이 흘러나와 바닥을 메꾸었다.

허크는 자신의 몸 상태도 잊은 채 헤기에게로 달려가 안으며 상태를 확인했다. 총알로 심장을 관통당한 헤기는 피를 쿨럭 거리며 토해내면서 눈을 감고 있었다.

허크는 방금 전 갑자기 나타나 권총으로 헤기를 맞춘 남자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내가 건들지 말라고 했잖아!!!!!!!!!!!!!”

 

 

남자는 허크가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 가없었다. 지금 바이러스 따위한테 애정이라도 생긴건가? 하고 허크에게 비소를 날리며 물었다. 허크는 화가 났다. 왜 지금 자신이 헤기가 죽는다는 사실에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헤기를 죽이려 들었던 것은 자신인데 막상 이렇게 피를 토하며 쓰러져 있으니 허크의 눈에선 알 수 없는 눈물이 났다.

 

 

헤기는 점점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눈을 떴다. 허크가 자신을 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저 놈은 왜 또 울고 지랄이야. 죽인다고 쫒아올 땐 언제고....

헤기는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서도 입 꼬리를 올려 피식하고 웃었다. 죽기직전에 보는 얼굴이 저 변태얼굴이라니 자신의 인생은 왜 이렇게 불행한지 모르겠다.

 

이봐요.....”

 

헤기..........”

 

다음에 만나면....”

 

 

 

내가 꼭 다시 와서 박살을 내줄테니까. 허크가 꽉 잡은 헤기의 손에서 서서히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낀 허크는 대답했다.

 

 

그래. 기다리마.”

 

 

 

 

 

 

**

 

 

 

 

 

날씨는 어느새 더워져서 낮에는 밖에 돌아다니기도 부담스러울 만큼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었다. 허크는 한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거리를 걸었다.

 

 

 

헤기가 사라진 이후로 도시는 다시 원상 복귀 되었다. 허크와 헤기의 싸움이 끝나자마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던 검은 링도 평소와 같은 숫자의 출현빈도를 보였다. 허크는 바이러스를 옹호하였다는 이후로 도시의 중심에서 외곽으로 쫒겨 나고 말았다. 소멸 당할 줄 알았는데 겨우 이정도의 벌만 내려진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검은 링이 출현하던 중심과는 다르게 이곳 외곽은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아 몇 개월째 무료하게 지냈다.

 

 

오늘도 대충 거리를 순찰하고 날씨도 좋은데 어디 놀러나 갈까 생각하는 허크에게 길을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스크림 덕분에 기분이 좋았던 허크는 최대한 친철한 얼굴로 뭔데하고 대답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센트럴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죠?”

 

 

 

 

 

 

몸을 돌린 허크의 눈에 보인 중심으로 가는 길을 묻는 청년의 얼굴은 그가 몇 개월째 기다리던 헤기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머리위에는 검은 링이 떠있었다.

 


 











해석

 

시발 이게 무슨소리야?!?!하는 분들을 위해서.....

 

 

이 소설에서 나오는 도시는 우리들 몸속의 '혈관'입니다.

링의 색깔은 각자 역할을 눈으로 보여주기 위해 제가 임의로 구별해 놓은겁니다.

 

빨간링: 적혈구

 

하얀링: 백혈구(마지막에 총 쏜 남자도 백혈구 중 하나)

 

검은링: 바이러스,세균들

 

그럼 문제~~회색링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백신'입니다.

백신의 사전적 의미는

 

우리의 몸은 외부에서 침입한 항원에 저항할 수 있는 항체를 생성하여 후에 동일한 항원에 감염되었을 때 신속한 면역반응을 나타내게 된다. 백신은 어떤 감염증에 대해 인공적으로 면역을 얻기 위하여 약화시키거나 죽인 미생물 또는 병원미생물이 생산한 독소액에 적당한 조작을 가하여 만든 것

 

결국 풀이하면 백신도 변형시킨 또 다른 바이러스란 소리죠!

 

결국 이 이야기는 백신인 헤기가 사람들의 손에 의해 타의로 혈관속에 들어가서 백혈구인 허크를 만나 싸웁니다. 그리고 몇 개월후 백신을 맞아가며 준비한 진짜 바이러스 '검은링의 헤기'가 몸속에 들어오게 되었다......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백혈구와 바이러스가 싸우면서 몸에서는 열(fever)이 나게 되져....

 




사실 저 혈관은 허크의 몸속의 혈관이고 헤기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열병을 치루는 허크를 표현해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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